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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로드 바이크를 타야 하는 두 가지 이유

입력
2016.10.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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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많은 매체들이 이런 제목을 붙인다. “OO가 XX하는 7 가지 비결”“당신이 OO해야 하는 12가지 이유”. 저런 제목들이 실제 트래픽을 올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모종의 ‘온라인 기사용 매뉴얼’ 같은 게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내 경우만 놓고 보면 저런 제목에 맥이 풀릴 정도로 쉽게 낚인다. 타고난 인품이 순수하고 순박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관심 있던 이슈에 저런 제목이 붙으면 빨려 들어가듯 클릭하고 만다. 궁금해서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본인이 매번 낚이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 지레짐작하게 된다. 오늘 칼럼 제목이 저렇게 된 이유다.

자전거는 에너지 소비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친환경적이다. 관절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다이어트 효과도 작지 않다.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것 자체가 원초적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로드 바이크’(싸이클이라고도 부르는)를 타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어떨까. 그 많고 많은 자전거 중에서 꼭 로드 바이크를 타는, 혹은 타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있다.

로드 바이크는 아름답다.
로드 바이크는 아름답다.

첫째, 로드 바이크는 빠르다. 자전거 중에서 제일 빠르다. 무슨 하나마나 한 소리냐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로드 바이크를 타는 이유, 타야 할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다. 속도는 로드 바이크의 레종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의 이유다. 로드 바이크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빨라지는 것 하나만을 위해 치열하게 개량되어 왔다. 그래서 혹자는 로드 바이크를 경주마 서러브레드나, F1 레이스 머신에 견주기도 하지만 사실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자전거에는 동력을 전달하는 구동부가 있을 뿐, 동력(엔진)은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드 바이크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이클로크로스.
로드 바이크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이클로크로스.

그래서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전거보다 엔진(체력과 기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같은 자전거라도 초보가 타는 속도와 프로 선수가 타는 속도는 천양지차다. 하지만 그게 곧 더 가볍고 빠른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무슨 자전거를 타도 초보는 느리겠지만, 그래도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더 가볍고 빠른 자전거를 탈 때 가장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는 이동 가능 거리를 늘린다. 무겁고 삐걱대는 생활 자전거로 겨우 10㎞ 정도 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정확히 맞는 최고 사양의 로드 바이크를 타면 그 몇 배의 거리를 갈 수 있다. 나는 미니벨로 중에선 가장 빠르다는 미니 스프린터 유형의 자전거를 타다가 로드 바이크로 옮겨갔는데, 로드 바이크를 처음 한강에서 탄 날 억울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니벨로로 그렇게 힘들게 왔던 곳을 로드 바이크로는 이렇게 쉽게 오다니, 이건 반칙이야 반칙!’

산악 자전거.
산악 자전거.

둘째, 로드 바이크는 ‘패셔너블’하다. 로드 바이크는 자전거 자체만 놓고 봐도 산악 자전거 등에 비해 선이 가늘고 유려하다. 라이더, 사이클리스트들의 복장 역시 유별나다. 특히 처음 보는 이들은 이른바 ‘풀 메이크업’ 상태의 로드 바이크 라이더가 자전거에서 내리는 순간 경악하며 눈을 떼지 못한다. 이들은 미국산 슈퍼히어로 같은 민망한 옷을 입고(유감스럽게도 대개 몸뚱이는 슈퍼히어로와 거리가 있다), 엄청나게 불편해 보이는 ‘클릿 슈즈’란 걸 신고서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닌다(클릿이란 페달링 효율을 높이기 위해 페달과 신발을 결착시키는 장치다).

클릿 슈즈의 바닥면.
클릿 슈즈의 바닥면.

바지를 자세히 보면 더 놀랍다. 이들은 그레코로망 레슬링 선수를 연상시키는 멜빵 달린 타이즈를 입는데(빕 숏 내지 빕 타이즈라 부른다), 가랑이 사이엔 작은 방석 같은 패드가 들어 있어서 민망하게 앞뒤로 도드라져 있다.

이것이 빕숏이다.
이것이 빕숏이다.

열성적인 라이더의 경우 대부분 다리에 털 한 올 없이 말끔히 면도가 되어 있다. 공기저항을 줄이고(우습게 들리겠지만 실제 공기저항이 줄어든다고 밝혀졌다! 눈곱만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근육 마사지와 상처 치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리에 털이 없다.
다리에 털이 없다.

대체 남의 ‘안구에 테러’하는 이 기괴한 복장이 어째서 ‘패셔너블’이냐고? 다시 한 번 자세히 봐주시기 바란다. 나는 그래서 패셔너블이란 말에 작은 따옴표를 붙였다! 로드 바이크의 세계에서만큼은 저런 기괴한 복장이 일종의 코드이고, 백년 넘게 쌓여온 로드 바이크의 역사 속에 스며들어가서 전세계 라이더들이 공유하게 된 전통이기도 하다. 양말 길이가 종아리의 어디까지 와야 공기역학적ㆍ미학적으로 적절한지를 가지고 식음을 전폐하며 논쟁을 벌이는 족속들이 바로 사이클리스트들인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필시, 누군가에겐 로드 바이크를 타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절대 타지 말아야 할’ 이유일 게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쩌면 뭔가를 해야 할,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나 의미를 만들어내야 안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특유의 질병일지 모른다. 친구를 따라서든, 그냥 삶이 팍팍하고 지루해서든 상관없다. 로드 바이크라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전거를 한번 타보기 바란다. 혹시 누가 아는가. 그것이 다른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될지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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