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좀 찍어주세요.” 최근 케이블채널 tvN 개국 1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경기 고양시 킨텍스. 아시아계 여성 둘이 서툰 한국말로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매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10여 명이 몰려 들어 그와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사랑을 받은 덕에 신원호 PD는 외국인도 알아 보는 유명인이 됐다.
‘포토타임’을 끝낸 신 PD를 어렵게 만났다. 그는 지난 1월 ‘응답하라 1988’을 끝내고 휴식을 이유로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2월경 다시 인터뷰를 위해 휴대폰 문자를 보내도 답을 하지 않고 한동안 ‘잠수’를 탔다. “그 땐 휴가 가서 그랬어요. 요즘엔 (기자들에게서)연락도 안 오네요. 요즘 어디 있냐고요? (작업실이 있는)상암동에서 지내요.”
‘응답하라 1988’가 끝난 뒤 9개월이 흘렀지만, 다음 시리즈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네티즌 수사대’가 가장 눈 여겨 보는 차기작의 시기는 1974년과 1980년이다. 1974년을 주목한 이유는 신 PD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1988년에 이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1974년”이라고 한 말에서 비롯됐다. 1974년엔 육영수 여사가 피격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뚫렸으며, 초코파이가 세상에 나왔다. 1980년이란 추측은 ‘응답하라 1988’ 방송에서 시작됐다. 소품으로 화면에 비친 라디오에 ‘1980’이란 연도가 적혀 있는 걸 네티즌이 ‘매의 눈’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 옆엔 1988과 1994, 1997이 적혀 있었다. 모두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이 됐던 해들이다.
네티즌의 호기심을 뒤로 하고 정작 신 PD는 “새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라고 했다. “내년 가을 방송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드라마의 중심 소재에 대해 “곧 말씀 드리겠다”고 말을 아꼈지만, 이미 정한 눈치였다. 가족 얘기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했다. 새 드라마를 위해 신 PD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함께 기획한 이우정 작가와 팀을 꾸렸다. 신인 작가를 발굴해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겠다는 각오다. 그는 “따뜻하고 새로운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끝난 건 아니다. 신 PD는 “잠시 쉬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시대 설정을 비롯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말도 보탰다. ‘응답하라 1988’ 얘기가 나오자 신 PD는 “너무 힘들어 꼴도 보기 싫다”며 웃었다. “촬영 끝나고 세트 제가 부수겠다고 했다니까요. 유리창도 깨고, 벽에 래커 칠도 했어요.”
기자와 만나기에 앞서 신 PD는 ‘응답하라! 쌍문동 청춘들의 오늘’을 주제로 ‘응답하라 1998’에 출연한 류준열과 안재홍, 이동휘와 드라마를 추억해 방청객의 관심을 샀다.
신 PD가 꼽은 명대사 중 하나는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였다. 언니와 동생에 치여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며 운 둘째 딸 덕선(혜리)을 달래면서 아버지인 성동일이 1회에서 한 대사다.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는 어떻게 키우고, 막둥이는 어떻게 사람 만드는 지 몰라서.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디. 긍께 우리 딸이 쪼까 봐줘”라면서 나온 말이다. 신 PD는 “나도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한다”며 “대사를 정하고 나중에 에피소드를 꾸린 케이스”라고 말했다.
극중 동룡(이동휘)이 해 유행어가 된 “덕선아, 어딨니?”의 뒷얘기도 들려줬다. 이 대사는 이동휘의 애드리브가 아니었다. 신 PD는 “대본에 한 번 썼는데, 동휘가 정말 잘 살려 계속 쓰게 된 것”이라고 웃었다. 신 PD는 털털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촬영과 편집을 꼼꼼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스태프들 사이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며 ‘신테일’이라 불릴 정도다. 이런 신 PD가 한 에피소드 촬영을 딱 5분 만에 끝낸 신이 있었다. 극중 정환(류준열)과 선우(고경표)가 축구를 하는 장면이다. 신 PD는 “이 친구들이 뛰다 보니 체력이 5분 만에 다 떨어지더라”며 “그나마 (류)준열이 가 축구를 잘해서 살았다”고 농담했다.
신 PD에게도 ‘응답하라 1988’은 유독 미련이 많이 남은 드라마였다. “편집을 하다 울컥”하기도 했단다.
“마지막 회에 쌍문동 골목길이 폐허가 돼요. 마지막 45분은 방송 불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슬프더라고요. 다른 드라마도 정 떼기 쉽지 않지만, 이 드라마는 특히 그랬어요. 저조차 같이 살았던 것 같이 착각이 들 정도였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 ‘응팔’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tvN 10주년 개국 행사장에는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골목길을 복원한 세트가 관객들을 맞았다. 택(박보검)의 집인 봉황당부터 진주(김설)가 타던 말 인형까지. 사진 속 추억은 덤이다. 사진=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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