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6분.
FC서울 선수들은 오늘 밤 이 순간이 생각나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서울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완벽한 추가골 찬스를 잡았지만 스스로 걷어찼다. 그리고 7분 뒤 전북 현대 로페즈(26)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서울의 역전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울이 간절히 바란 ‘1%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은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지난 달 28일 원정 1차전에서 당한 1-4 대패를 극복하지 못했다. 전북이 1ㆍ2차전 합계 5-3으로 결승에 올라 2006년 이 대회 정상에 선 이후 10년 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전북의 결승 진출은 2011년 이후 5년 만이다. 당시에는 결승에서 알 사드(카타르)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전북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과 우승컵을 놓고 다툰다. 알 아인은 유럽 리그에서도 주목하는‘아시아의 신성’오마르 압둘라흐만(25)과 한국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이명주(26)가 뛰는 팀이다. 결승은 11월 19일(홈)과 26일(원정) 벌어진다.
황선홍(48) 서울 감독은 예상대로 아드리아노(29)-데얀(35)-박주영(31) 이른바 ‘아데박’ 트리오를 모두 선발 출전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1차전에서 대패한 서울 선수들은 전반 초반부터 기민하게 움직였다. 터치라인 밖으로 볼이 나가면 스스로 주워왔고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반면 전북 선수들은 최대한 느긋하게 플레이 했다. 심판은 그 때마다 휘슬을 불며 빠른 경기 재개를 촉구했다. 전반은 자연스럽게 서울 선수들이 맹공을 펼치고 전북은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이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 밀집 수비를 구축하는 패턴으로 흘렀다. 전북은 역습에서 로페즈가 저돌적인 돌파로 가끔 서울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정도였다.
두드리고 두드리던 서울의 선제골은 전반 37분 나왔다.
밀집 수비를 깬 건 모험적인 패스였다. 고요한(28)은 페널티 지역 왼쪽 지점에서 침투해 들어가는 김치우(33)에게 스루 패스를 찔러줬다. 수비수 두 명 사이로 딱 공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뚫고 패스가 이어졌고 김치우의 땅볼 크로스를 받아 아드리아노의 슛이 그물을 갈랐다. 역전극의 필수 조건인 전반 선제골이 만들어졌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기대감을 갖기에는 충분한 시간대였다.
운명의 후반 6분.
서울의 패스를 전북 수비수 박원재(32)가 뒤로 빠뜨리고 말았다. 이 볼을 서울 주세종(26)이 잡아 골키퍼 한 명만 있는 전북 골문을 향해 달렸다. 사실상 박원재가 밥상을 떠다 바친 격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천금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주세종은 타이밍을 놓쳐 직접 슛으로 연결하지 못했고 반대편의 박주영에게 패스했다. 이미 몇 명의 수비수들이 복귀한 뒤였다. 박주영은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볼은 상대 수비를 맞고 골문 옆으로 살짝 벗어났다. 박주영 옆에 있는 아드리아노의 위치가 더 좋았지만 주세종은 이를 보지 못했고 두 팀의 운명은 여기서 엇갈렸다. 이 골을 내주면 벼랑 끝까지 몰릴 뻔했던 전북은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최강희(57) 전북 감독은 후반 9분 공격수 이동국(37)과 고무열(26)을 투입해 동점골을 향한 의지를 나타냈다. 결국 후반 13분 로페즈가 서울 골문 오른쪽에서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골문을 열며 승부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교체 투입된 고광민(28)이 종료직전 기어이 1골을 추가해 2-1을 만들었다. 그들의 투혼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 했지만 1차전 대패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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