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선 “신 회장 구속 땐
日에 경영권 상실 위험” 압박도
검찰이 롯데그룹 관련 핵심 의혹 규명에 실패한 것은 강제수사가 불가능한 일본 롯데의 주요 법인들에 대한 수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주요한 요인이었다. 오히려 재계에서 주장한 ‘경영권 상실 위험’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론에 발목을 잡힌 꼴이 됐다.
19일 검찰에 따르면 수사 초반 화력을 집중했던 롯데케미칼의 일본 계열사 ‘끼워 넣기’를 통한 230억원대 배임 혐의는 신동빈(61) 회장의 범죄 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불필요한 거래 경로를 만들어 일본 롯데물산에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검찰은 일본 롯데물산의 주주들이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설명했지만, 수사를 받는 일본 법인들이 순순히 협조하길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230억원 가운데 한국 법인인 롯데상사가 개입한 거래에 한해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에게 50억원대 배임 혐의를 적용하는 데 그쳤다.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는 국내 롯데 계열사들은 호텔롯데-일본 롯데홀딩스-광윤사로 이어지는 일본 법인의 지배 구조에 속해있다. 비자금 조성을 확인하려면 일본 법인에 대한 압수수색 등이 필수였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검찰이 별도의 복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벽에 부딪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6년 신격호(94)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신영자(74) 롯데재단 이사장 및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57)씨 모녀에게 증여하면서 1,156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포탈했다는 범죄 사실도 롯데 측이 시인한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 측이 자료 제출을 거부함에 따라 검찰이 당시 주식시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탈세 규모가 2,857억원, 가산세 등을 포함해 6,000억원 상당을 국세청에 납부해야 할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이마저도 재판이 끝나기 전에 일본 국세청이 관련 자료를 넘겨줘야만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는 “신 총괄회장이 동주, 동빈 형제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과정에도 탈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입증은 요원하기만 하다.
반면 롯데 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재계는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일본 경영인들에게 롯데의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검찰을 압박했다. 검찰은 “오너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기업 지배구조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재계와의 ‘명분 싸움’에서도 고전해야 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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