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지의 세계’로 잘 알려진 이자혜(25) 작가가 지인 성폭행을 모의ㆍ방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화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 작가는 웹툰 외에도 미술 전시, 페미니즘 행사 등에 참여하며 페미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해와 파문이 예상된다.
발단은 19일 새벽 이모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었다. 이씨는 글에서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고 동경해온’ 이자혜 작가에게서 소개받은 30대 중반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지만 이 작가는 오히려 트위터에서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고도 덧붙였다. 강간이 일어나기 전 이씨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잠자리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피해자는 이어 이 작가의 ‘포도주와 포타주의 식사’라는 만화 속에 자신과 가해 남성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파문이 일자 이 작가는 즉각 장문의 해명 글을 올렸다.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는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작품에 사용하지도 않았고, 트위터에서 이씨를 모욕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해당 남성을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억울함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이 글을 게시한 뒤 바로 삭제했다. 이후 그는 트위터에 “이모씨에게 과거 성희롱 및 욕설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타인에 의해 성폭력을 모의하도록 한 점에 대해서 사과 드리며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며 이씨의 주장을 시인하는 글을 올렸다. 이 작가는 ‘미지의 세계’를 주제로 과거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내 주변 사람들의 노골적인 욕망이 좌절되는 과정을 그대로 만화로 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지의 세계’ 단행본을 출간ㆍ판매 중인 출판사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이자혜 작가 관련 입장문’이라는 글을 통해 해당 서적 판매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발간된 1, 2권도 전량 회수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어마인드는 “만화가 읽히는 것이 피해자에게 반복적이고 추가적인 가해가 될 수 있는 점을 알았다”며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는 사실에 취해 신중히 진행하지 못한 점을 뒤늦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의 그림을 2호(10/11월호) 표지에 사용한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민음사)도 해당 잡지를 전량 회수ㆍ폐기하겠다고 밝혔다. 민음사 측은 “페미니즘을 특집으로 다룬 이번 호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잡지에 글을 실을 필자와 잡지를 구독하는 독자 모두에게 상처가 되기 충분했다”며 “특히 해당 사건의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과하고 릿터 2호의 잔여 수량을 회수 및 폐기처분한다”고 말했다.
2014년 8월부터 연재된 ‘미지의 세계’는 적나라한 에피소드에도 불구 ‘병맛’ 만화의 여성판으로 인기를 끌었다. 허영과 욕망을 비판하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미지’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 파격이라는 비판과 공감된다는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단행본 출판을 위해 500만원을 후원 받는 프로젝트에서는 1,368만원이 모금되기도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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