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마이산이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험한 산골이지만 장수익산고속도로 개통 이후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장수에서 진안으로 들어서면 고속도로 정면으로 ‘말의 귀(馬耳)’를 닮은 두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적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수마이산, 조금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암마이산이다. 생김새 때문에 수마이산(679.9m)이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암마이산(686m)이 조금 더 높다. 진안 고원에서 이 정도는 높다고 할 수도 없는데 유난히 도드라지는 건 역시 독특한 생김새 때문이다. 암수 두 봉우리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좌우를 바꾸기도 하고, 포개지기도 하지만 어디서 보더라도 신비스러운 기운은 그대로다.
진안IC를 빠져 나와 왼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비게이션에 마이산을 치면 ‘마이산 남부’와 ‘마이산 북부’로 구분되어 나온다. 100여 개의 돌탑이 골짜기를 메운 탑사는 남부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익숙한 돌탑보다 듬성듬성 움푹 파인 마이산 절벽에 먼저 눈길이 간다. 멀리서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보이지만 마이산은 크고 작은 자갈에 모래와 진흙이 단단히 뭉쳐진 역암(礫巖)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주변 땅은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는 호수였다. 그 후 수 차례 지각변동을 거쳐 우뚝 솟은 모습이 지금의 마이산이다.
풍화작용으로 자갈이 떨어져 나간 곳을 보면 흡사 흙으로 쌓았다 허물어진 토성처럼 보인다. 자칫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불안해 보일 정도다. 지질학자들은 역암이 수직에 가깝게 거대한 산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이산이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건 돌과 돌 사이 열에 약한 부분이 녹아서 시멘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낙석으로 인한 인명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암수 두 봉우리 옆은 조금 규모가 작은 나도산이다. 마이산만 산이 아니라는 항의성 이름이다. 마이산을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부각시킨 돌탑은 바로 마이산 두 봉우리와 나도산 사이 아담한 골짜기에 모여 있다.
안내판에는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 처사가 30여 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처사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몇몇 탑은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한다. 탑의 규모나 사용한 돌의 무게를 감안하면 혼자서 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다. 탑의 축조 과정도 마이산처럼 신비에 싸인 셈이다.
탑은 얼핏 쌓기 편한 자리를 골라 세운 것 같지만, 음양오행설에 맞춰 자리를 잡았다는 게 박광식 전북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꼭대기의 2개의 천지탑(주탑)을 비롯해 원추형 탑이 5개이고 나머지는 외줄 탑이다. 아랫부분 돌무더기가 서로 연결된 주탑을 5개의 외줄 탑이 호위하는 구조로 배치돼 있다.
임금의 용상 뒤 병풍을 장식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의 모티브도 마이산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마이산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인연 때문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신인(神人)에게서 금으로 만든 자(금척, 金尺)를 하사 받는 꿈을 꾸었는데, 남원 운봉과 완산(지금의 전주)에서 적을 무찌르고 개선하던 길에 들른 이곳 산세가 꿈에서 본 모습과 흡사해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다. 이를 근거로 수마이산 아래 자리한 은수사 태극전에는 일월오봉도와 함께 금척하사도를 걸어 놓았다. 주민들은 요즘도 마이산을 속금산으로 부른다.
박광식 해설사가 마이산 여행객들에게 꼭 추천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있다. 마이산 남부 주차장에서 차로 약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정자, 수선루(睡仙樓)다. 마이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암 바위틈에 절묘하게 걸터앉았다. 마루와 작은 방 한 칸이 전부지만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 경치만은 넉넉하다. 누대에 오르면 더없이 아늑하고 포근해 글을 읽거나 낮잠 한 숨 즐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안내판에는 조선 숙종12년(1686) 연안 송씨 4형제가 조상의 덕을 기리고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세웠다고 적고 있다. 수선루 가는 길모퉁이에는 쌍벽루라는 정자도 있는데, 연안 송씨와 라이벌 관계였던 천안 전씨 가문에서 다분히 수선루를 의식해 지은 누각이다. 두 가문의 자존심 경쟁의 유산이 남아있는 강정마을도 느긋하게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미슐랭 별점3개…진안군 추천 마이산 촬영 포인트
마이산은 사실 멀리서 볼 때 더 신비로운 산이다. 그래서 촬영 포인트마다 사진 좀 찍는다는 ‘작가님’들이 전국에서 몰려 든다. 진안을 거치는 여행객들이 가장 가까이서 마이산을 접하는 곳은 장수익산고속도로 익산방면의 ‘진안마이산휴게소’다. 휴게소 왼편에 전망대를 따로 설치해 놓아 코앞에서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진안군이 추천하는 대표적인 출사 포인트는 3곳이다. 첫 번째로 꼽는 곳은 일몰이 아름다운 반월저수지다. 진안IC에서 빠져 나와 연속해서 2차례 좌회전하면 반월마을이다. 느티나무 숲이 제법 운치 있는 마을을 통과하면 진안군농업기술센터, 저수지는 센터 앞 농지가 끝나는 부분에 있다. 전망 데크에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수마이산에 암마이산이 살짝 가려져 겹쳐 보이는 게 아쉽지만, 제방이 수평선 역할을 해 봉우리가 한층 오뚝하고 잔잔한 수면에 비친 모습도 또렷하다. 해질녘 붉은 노을이 저수지까지 물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두 번째 포인트는 마이산 북부의 사양저수지(혹은 사양제). 이곳에선 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두 봉우리가 좌우로 선명하게 갈라져 보인다. 호수에 비쳐 상하 대칭을 이룬 모습은 나비의 날개짓을 연상시킨다. 굳이 호수 중앙을 가로질러 산책용 데크를 설치했는데, 수면에 반영된 모습을 찍기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각도가 좁아진 만큼 광각렌즈가 필수다. 이곳에선 이른 새벽 물안개가 걷힐 무렵이 가장 좋다.
마지막은 부귀산 전망대. 진안읍 북측 부귀산(806m)의 7부 능선쯤이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진안읍 운산리 외후사마을에서 임도를 한참 거슬러 오르면(약 3.4km) 두남치 고개마루다. 전망대는 이곳에서 또 300m 가량 가파른 등산로를 걸어야 나온다. 이곳 역시 안개가 짙은 가을과 겨울 새벽이 사진 찍기에 가장 알맞다. 높은 만큼 경치는 시원하고 구름인 듯 안개 사이로 우뚝 선 마이산 봉우리는 더욱 신비스럽다. 운해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의 귀라고 이름 붙인 연유도 한결 뚜렷해진다.
진안=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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