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3일 세계 발레계의 이목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쏠렸다. 관심의 주인공은 전설의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53).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 수석무용수로 22년간 활동했던 페리는 이날 케네스 맥밀란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역을 맡았다. 2007년 은퇴 공연을 한 바로 그 장소, 그 작품이다. 영국 로열발레단(1980~1984), 이탈리아 라 스칼라 발레단(1992~2007) 등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활동한 페리는 줄리엣 역으로 가장 유명하다.
페리가 이 작품으로 한국을 찾는다. 22~29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발레단의 황혜민, 강미선, 김나은과 함께 줄리엣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가 무대에 서는 것은 23일과 26일로 ABT 수석무용수 에르만 코르네호가 로미오 역을 맡는다.
18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국에서 한 번도 주역으로 공연한 적이 없어 이런 시간이 올 거라고 예상 못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저에게 특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페리가 처음 줄리엣 역을 맡은 것은 21살이던 1984년. 당시 영국 로열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발레리나였던 그는 이 작품으로‘맥밀란의 뮤즈’로 불리며 전세계 이름을 알렸다. 그가 줄리엣으로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동상이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있다.
2007년 은퇴했다 7년 만에 복귀한 페리는 “제 자신과 경쟁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은퇴했는데, 춤추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은퇴 후) 작은 무대에서 서는 춤부터 시작해 ‘셰리’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시 큰 무대에 서게 됐죠. 그 과정에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이제 제가 춤을 추는 이유는 저 자신을 위해서죠.”
페리는‘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과 증오 폭력을 표현하는 현실적인 우리 삶과 같은 얘기”라고 소개했다. “일반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작품’이 아니에요. 맥밀란의 사전에 ‘예쁘다’란 단어는 없습니다. ‘아름다움’은 있지만요. 맥밀란은 무대 위에서 현실적인 ‘인간’이길 원했는데 동작 위주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게 엄청난 도전입니다. 실제 인물이 돼 감정, 내면을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페리가 ‘최고의 파트너’로 추천,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추는 ABT의 에르만 코르네호(35) 역시 입단 1년 만인 18살에 발레단 수석을 꿰찬 스타 발레리노다.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2014년 수상하는 등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은 테크닉과 연기 모든 면에서 남성무용수에게 엄청난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며 “페리는 동작 위주가 아닌 그 역에 맞는 연기, 내면을 표현하려 접근한다. 호흡을 맞추며 제 자신의 표현력이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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