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송민순 회고록’ 논란의 제12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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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송민순 회고록’ 논란의 제12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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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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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정치권에서 파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한국일보는 논란이 된 부분인 제12장 전문을 회고록 출판사인 창비의 양해를 얻어 일부 공개합니다. 550쪽에 달하는 회고록 가운데 일부이긴 하지만 이번 파문의 실체가 무엇이고, 맥락이 어떠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6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제12장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대북정책

북한 인권, 흔들린 원칙

2007년 다시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외교부장관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1년 전에 심한 논쟁 끝에 대통령의 결정을 받아 찬성 투표했는데, 인권의 보편적 원칙은 물론이고 국가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전의 10월 남북 정상회담이 사정을 흔들어놓았다. 11월 15일 이 문제가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정식으로 논의되었다. 나는 이번 결의안이 이미 우리의 요구를 반영해 크게 완화되었고, 또한 우리가 북한의 인권 상태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취해야 국제사회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신뢰를 보이고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의 입장은 달랐다. 북한인권결의안이 북한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될 수 있고, 또 인권결의안으로 실제 북한 인권이 개선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으며, 특히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관계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기권을 주장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

내가 “꼭 그렇다면 찬성과 기권 입장을 병렬해서 지난해처럼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했다. 그랬더니 문재인 비서실장이 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느냐면서 다수의 의견대로 기권으로 합의해서 건의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동의할 수 없다면서 버티자 회의는 파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마침 이 시기, 서울에서 남북 총리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11월 16일 노 대통령은 북한의 김영일 총리를 포함한 남북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을 가졌다. 11월 20일에는 유엔의 표결이 예정되어 있었고, 월요일인 19일에는 대통령이 ‘아세안+3’ 정상회담 참석차 싱가포르로 출국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11월 16일 오후 대통령 주재 하에 나와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실장 등 5인이 토론했다. 대통령은 다 듣고 나서는 “방금 북한 총리와 송별 오찬을 하고 올라왔는데 바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하니 그거 참 그렇네” 하면서, 나와 비서실장을 보면서 우리 입장을 잘 정리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뒤에 남아서 더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집무실로 돌아와 혼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대통령에게 마지막 호소문을 올리기로 했다. A4 용지 4장에 만년필로 나의 생각을 담아서 밤 10시경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이틀이 지나 11월18일 일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장관들이 다시 모이자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저녁 늦게 청와대 서별관에 도착하니 다른 네 사람은 미리 와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다시, 인권결의안에도 찬성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 핵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우리의 방안에 협력해달라고 다른 나라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면서, 내가 장관 자리에 있는 한 기권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북측의 반발에 대해서 너무 우려하지 말라면서 유엔에서 남북대표부 간 막바지 접촉 경과를 설명했다. 당시 유엔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지난 5년간 몇몇 나라가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추진했다고 비판하면서 한국이 결의안에 대한 찬성을 전제로 수정안을 내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나의 주장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다른 세 사람도 그 방법에 찬동했다. 나는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면 어떡하나. 나올 대답은 뻔한데. 좀 멀리고 보고 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참 논란이 오고 간 후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인 11월 19일 아침 대통령을 수행해서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11월 20일 저녁 대통령의 숙소에서 연락이 왔다. 방으로 올라가보니 대통령 앞에 백종천 안보실장이 쪽지를 들고 있었다. 그날 오후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면서 나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것이었다. “역사적 북남 수뇌회담을 한 후에 반(反)공화국 세력의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다”라는 요지였다.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백 실장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나올 줄 모르고 물어봤느냐”라고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백 실장은 자리에서 떴다. 나는 달리 쳐다볼 곳이 없어 한참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대통령도 기분이 착잡한 것 같았다. “북한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찬성투표하고, 송 장관한테는 바로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하며 말을 끝맺지 않았다. 외교장관이 알아서 찬성 투표하게 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체면은 살리고, 그 후 장관을 해임하면서 북한에 대한 입지도 살리는 고육지계를 생각했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게 오히려 맞습니다. 지금 이 방식은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좋지 않고 대외관계 전반에도 해롭습니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데 이렇게 물어 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정부 임기가 6개월 정도만 남았더라도 사표를 냈겠지만 석 달을 앞두고 나의 명분만 차리겠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노 대통령은 잠시 후 “나 참, 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 하면서 침실로 들어갔다. 이날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외교장관과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다음 날 유엔에서 한국은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 기권했다. 4년 사이에 한국은 이 결의안에 대해 불참-기권-찬성-기권으로 가는 지그재그 행보를 걸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송민순 회고록'인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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