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저널리즘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
최근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게임, 교육, 의료,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미디어, 저널리즘 산업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가상현실(VR) 저널리즘’분야에 대한 투자와 개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근래 몇 년 사이에 가상현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컴퓨테이셔널(Computational) 저널리즘, 가상현실 저널리즘, 실감 저널리즘 등 새로운 저널리즘 분야들을 실현시키는 단계에 올라와 있다. ‘인더스트리 4.0’이라 불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 언론분야에도 적용되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서비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기존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언론서비스의 창출이라는 블루오션을 제공함으로서 위기에 처해 있는 언론에게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다는 기대감도 증폭되고 있다.
언론사 주요 보도 수단된 지 오래
미디어 수용자가 보다 현실적으로 보도를 접하도록 돕는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2012년 효시격인 뉴스위크의 ‘로스앤젤레스의 기아(Hunger in Los Angeles)’등장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가상현실 기술 접목으로 흥미와 진지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이 같은 다큐멘터리 보도물은 이후 주요 언론사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그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상현실 기사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카드보드로 만든 뷰어 100만여 개를 구독자에 무료 배포하는가 하면 최근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난민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사 ‘난민(The Displaced)’시리즈를 내놔 한층 진보한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줬다. NYT는 이밖에 ‘워킹 뉴욕(Walking New York)’이란 제목의 가상현실 기사로 뉴욕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생생한 일상을 VR영상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구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워싱턴타임스도 화성 표면의 가상현실로 독자를 데려갔고, abc뉴스는 북한 군대의 퍼레이드와 시리아 난민 참상의 현장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어갔다. 대단한 VR전용 장비를 필요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독자경험을 중시한 이들 보도물은 글과 사진, 그리고 동영상 이후 미디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가늠케 한다. 이밖에 영국 BBC는 프랑스 북부에 마련된 시리아 난민 캠프 한 가운데를 걷는 듯한 영상과 사진으로 기사를 꾸몄으며, 미 공영방송 PBS도 가상현실 기법을 응용해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NBC는 심지어 증강현실(AR)게임 ‘포켓몬 고’를 적용한 방송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학계는 이처럼 가상현실 기법이 적용된 뉴스와 보도물은 신문이나 단순 영상보다 미디어 소비자에게 훨씬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여러 감각에 동시 소구하며 ‘체험’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진정성 왜곡 논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 현상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뉴스보다 어쩌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울 수 있는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결국 ‘반짝’빛을 발한 후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꾸준히 이어짐은 물론이다.
여러 논쟁 속에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가상현실 기술이 독자(혹은 시청자)와 뉴스 대상 사이의 간극을 혁신적으로 좁히고, 사용자의 경험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일반 독자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직접 가 볼 수 없는 전쟁터나 오지를 체험할 수 있고, 이는 기사의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사용자 경험의 고급화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 360도 카메라 촬영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가 출시되어 전방위 각도와 상하를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 즉 사용자가 카메라 각도를 마음대로 조정해 보고 싶은 장면을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기존 카메라를 통한 촬영에 남아있던 기자의 관점이 사라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른바 언론의 ‘프레이밍(틀짓기)’을 수용자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와 관련해 보도되는 이야기의 객관성과 진정성의 문제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실감형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현실을 재구성한 3D동영상이 팩트(사실)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각종 사건 사고의 신고전화 녹취,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재구성한 사건영상이 아무리 사실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가상이라는 한계가 있다. 즉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가상현실 체험’이냐, 아니면 ‘현실 왜곡’이냐라는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렌더링(Renderingㆍ가공)한 장면은 과연 저널리즘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지와 같은 민감한 지적도 이어진다. 또한 가상현실 저널리즘에 있어 객관성은 어떻게 담보하도록 장치를 구현하는지도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기기의 사용성 문제도 관건
많은 미디어학자와 언론인들은 가상현실 저널리즘 구현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기가 아닌 콘텐츠라고 역설하며 ‘콘텐츠가 왕(Content is King)’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가상현실을 구성하는 하드웨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의 기기를 통해 전달되는 콘텐츠이며, 그 콘텐츠를 담아내는 미디어와 그 미디어를 수용하고 경험하는 사용자라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의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꾸려내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몰입적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가상현실의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와 같은 기구를 개발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게임이나 영화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콘텐츠가 얼마나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느냐가 결국 가상현실 미디어 시장의 확대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콘텐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장성과 상품성이 떨어지면 결국 3DTV와 같은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사용성 측면의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3D화면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에 뇌와 신경, 시각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기기를 착용하고 장시간 가상현실 뉴스의 영상시청시 두통, 발작, 어지러움, 메쓰꺼움 등 생리적 부작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사용성의 문제는 결국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실제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어렵다는 우울한 전망을 가능케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수용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얘기이다.
신동희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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