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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죽은 전문가의 사회

입력
2016.10.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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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의 선집 중 ‘지식인의 표상’(마티 발행, 2012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른바 보편적 지식인이 특수 지식인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특수 지식인은 하나의 영역에서 일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푸코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 1942년에서 1945년까지 로스앨러모스 원자폭탄 프로젝트의 관리자로 일했으며, 이후에 미국의 과학 사업들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고문이 된 인물입니다.’ 오펜하이머는 뒤에 수소폭탄을 반대했지만, 사이드가 여기서 그를 인용한 것은 ‘이론물리학자’가 ‘원자폭탄’의 산파가 된 사례를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특수 지식인’이란 말은 한국식으로 ‘전문가’에 해당할 듯 하다. 말뜻만으로 보면 ‘지식인’은 전체를 알아야 하고 윤리적인 책임도 져야 하지만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기능이 뛰어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자’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전문가는 자주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비난에 직면하는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줄줄이 벌어지고 있다.

판사와 검사는 법조계의 스페셜리스트다. 그런데 이 나라 판사는 사건 청탁과 함께 사채업자에게서 버젓이 돈을 받는다. 검사들은 한술 더 떠 업자들과 내통하며 재산을 불려나갔다. 둘 다 법의 단죄까지 받았다. 의사는 의술의 전문가다. 그런데 누가 봐도 사인이 뻔한 죽음을 ‘병사’라고 고집하면서 “확신을 갖고 소신껏 썼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의사라면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유족에 권해야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유가족들에게 (연명 치료를 위해)투석을 권유했지만 고인의 유지라며 투석과 심폐소생술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며 가족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한다.

전문가 집단인 서울의 한 여자대학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아주 볼만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 대학은 한 학생을 특기생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선발 기준을 추가했고, 그래서 입학한 그 학생을 봐 주려고 학칙을 바꿨다. 그 학생이 수업에 나오지 않자 리포터 평가로 학점을 대신했고, 인터넷 글을 긁어다 모은 듯한 질 낮은 리포터에 후한 학점까지 줬다. 오죽 분통이 터졌으면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이, 아니 졸업생까지 공동으로 거듭 대자보까지 붙일까.

그 대자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째서 같이 매일 밤을 새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과제를 마친 뒤 매주 수업에 나왔던 학우가 더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나요.…수강하고 싶은 애들도 많았는데 왜 이 학생은 수강신청을 해놓고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교수님이)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학생이)나중에는 자동 F에 이를 정도의 결석 횟수가 차서 ‘얘는 이미 F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제가 되는 이들이 비난 받는 이유는 제 각각이다. 가장 명료하고 그래서 최하급은 판ㆍ검사다. 돈에 대한 욕망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경우는 좀 모호하다. 정치 권력의 압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 없어. 내가 아는 것만 말 할게”라는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고, “에이 한 번 말한 건데 고치기도 뭐하네”라는 아집일 수도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대학 교수의 경우, 대자보는 이런 비난을 한다. “권력자의 더러움이 판을 치는 시대에 학생들의 편에 서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권력자의 밑에 붙어 비리에 동조하는 당신들을 스스로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가?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진실은 그 대학 교수님과 총장님만 아실 것 같다. 아, 이 모든 것을 대한민국 일부 ‘특수 지식인’들의 일탈로 돌리고 싶다.

김범수 문화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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