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호 선생님이 전화하셨어요. ‘공연 하나 해라, 10월 27, 28일 체크해놓고.’ 이러고 끊으셨죠.(웃음) ‘알겠습니다’ 하고 작년 영상을 보니까 ‘완전 전통 무용’이더라고요.”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39)이 한국무용, 그것도 90분 전막 공연의 주인공에 도전한 내막은 이랬다. 그녀는 27, 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춤극 ‘신시’(구성ㆍ안무 국수호)에 서울시무용단 단원 김경애와 더블 캐스팅됐다. 뮤지컬 ‘팬텀’,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판쵸’ 등 여러 장르에 도전하며 발레 대중화를 이끈 김주원이건만, 그녀가 한복 입은 웅녀(그렇다 단군신화의 그 웅녀다) 역을 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발레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주원은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국수호 선생님과는 10년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며 “오랜 기간 작업한 이정윤(전 국립무용단 수석), 윤전일(전 국립발레단 단원)도 출연한다고 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김주원은 2006년 국수호의 춤극 ‘사도세자’에서 혜경궁 홍씨를 맡았고, 국수호는 김주원이 수석으로 활동한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왕자호동’의 연출을 맡은 바 있다.
“클래식발레만 할 때보다 여러 스타일의 춤을 추면 (발레에도)도움돼요. 뮤지컬 연극과 협업하면 춤만 출 때 몰랐던 표정이나 디테일한 감정선을 더 잘 배울 수 있죠. 발레 공연 앞두고 연극 연출가에게 봐달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국내 발레단에서도 여러 춤을 시도 해왔는데 제가 주목을 받았을 뿐이죠.”
김주원은 21, 22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춘 창작 발레 ‘한여름 밤의 꿈’과 이 작품을 함께 연습하고 있다. 김주원의 말을 빌리면 “땅과 함께 호흡하는 땅의 춤(한국무용)과 중력을 무시하고픈 하늘의 춤(발레)”을 동시에 추고 있는 셈. 두 춤의 결이 달라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국립발레단 시절부터 2, 3개 작품을 함께 연습했다”며 “무용수는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게 몸에 좋다”고 말했다. “연습해 보니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춤의 호흡이 길다는 거죠. 호흡이 길다는 건 상대방과, 음악과, 무대와 내 춤을 아우르며 같이 간다는 거거든요. 한국무용은 원래 한 호흡이 길고, 뛰어난 발레리나들도 각 동작의 에너지를 이어서 긴 호흡으로 펼치죠.”
단군신화를 모티프로 한 ‘신시’는 웅족, 천족, 호족이 갈등과 전쟁 끝에 상생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내용의 춤극. 춤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녀도 이번 작품에서 유독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무용수들이 몸과 몸을 엮어 만든 ‘인(人)다리’를 건너는 장면이다. 가녀린 무용수 수십 명의 허리를 잘근잘근 밟는 게 “미안하고 무서워” 첫 런스루가 끝나고 한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했다고. “발레에서는 남의 몸을 밟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거든요. 한데 한국 무용에서 누군가를 위해 등을 내주는 걸 굉장히 좋은 의미로 풀이하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못 밟으니까 되려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시던데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어색해요.”
내년이면 프로 데뷔 20년을 맞는 김주원은 “나이 들어 가는 게 좋다. 스무살의 힘 좋은 테크닉을 보여줄 순 없지만 마흔에 갖는 깊이 있는 춤은 따로 있다. 이번 작품이 그런 깊이를 더해주는 도전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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