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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소수민족의 금빛 풍경화, 사파 트레일

입력
2016.10.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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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4일이야.” 사파에 갈 거라고 했더니 한 이스라엘 친구가 건넨 충고다. 실제 우리가 계획한 이틀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사파 트레일에서 다랑이 논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표식이다.
사파 트레일에서 다랑이 논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표식이다.
사셍 마을의 어머니와 딸. 어느 나라든 둘의 관계는 성스럽다.
사셍 마을의 어머니와 딸. 어느 나라든 둘의 관계는 성스럽다.

하노이에서 사파행 버스에 탑승했다. 탑승이란 말이 유난히 어색했다. ‘슬리핑 버스’란 이름에 충실한, 무조건 눕는 자세의 버스였다.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았다. 한국인 평균 체형도 이곳에선 절망한다. 길이는 짧고, 폭은 좁고, 천장은 낮다. 한계는 쉽게 찾아왔다. 뒷좌석은 화장실 냄새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앞 좌석은 기사의 끝없는 경적과 싸워야 하는 불면의 버스였다. 사파 여행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거란 예행연습이었을까. 버스는 약 6시간 후 구름 속으로 성큼 뛰어올랐다. 귀는 먹먹해지고, 구름과 밀림 사이로 계단형 농경지가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금니로 눈을 시리게 하던 주주(오른쪽). 실버 체인 목걸이엔 에펠탑이 훈장처럼 달려 있다.
금니로 눈을 시리게 하던 주주(오른쪽). 실버 체인 목걸이엔 에펠탑이 훈장처럼 달려 있다.
특수 마찰력이 있는 듯한 욕실용 슬리퍼의 신화. 레드 짜오족의 빗길 묘기였다.
특수 마찰력이 있는 듯한 욕실용 슬리퍼의 신화. 레드 짜오족의 빗길 묘기였다.

버스는 정류장도 아닌 노상에서 엔진을 껐다. 동시에 창 밖으로 검게 몰려든 무리의 소음이 엔진소리처럼 켜졌다. 숨부터 골랐다. 사파 여행은 이 소수민족과의 마찰로부터 시작될 거라 익히 들었다.

고사리손 상인과 현지 트레킹 가이드들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상한 결심 같은 걸 했는데 의외로 싱거웠다. 유난스럽지 않고 오히려 정중했다. 충격이라면, 오히려 그들의 언어 능력이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수완도 뛰어났다. 어디서 온 여행객인지부터 확인한 여성은 자연스럽게 공책을 펴 보였다. 선행한 한국인 여행자의 방명록이다. 그녀의 이름은 주주. 매주 인근 박하(Bac Ha)에서 열리는 플라워 흐몽족(Flower H’mong)의 시장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은 사파 트레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정보를 흘렸다.

트레일은 가이드의 집을 기점으로 트레킹을 한 뒤 오토바이로 사파 시내를 돌아오는 한나절 코스다. 옵션은 홈스테이다. 시장이냐, 트레일이냐, 토요일 오후에 도착한 단기 여행자에게 던져진 난제였다. 그녀와 우아 짜우(Ua Tsaug, ‘감사합니다’란 흐몽어)로 작별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앞길은 혼탁했다. 늘 그랬다. 여행이 허락한 시간은 부족했다.

큰 산 사이로 작은 구릉, 작은 구릉 사이로 다랑이 논. 사파는 입체적이다.
큰 산 사이로 작은 구릉, 작은 구릉 사이로 다랑이 논. 사파는 입체적이다.

사파는 수려한 계단식 농경지, 다랑이 논으로 이름난 곳이다. 베트남 최고봉 판시판 산(Fan Si Pan, 3,143m)의 정기 아래 9~10월이면 노랗게 익은 농경지는 차라리 금빛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금빛의 주인은 소수 민족. 주주 같은 흐몽족(H’mong)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짜오족(Dzao) 타이족(Tay), 그리고 짜이족(Dzay) 등 6개 소수민족이 터를 닦고 있다.

이들의 삶은 기후와 직결해 있다. 하루를 1년처럼 산다. 하루가 곧 사계절이다. 초봄 날씨로 아침을 열고, 해맑은 여름의 정오가 되었다가 구름 낀 가을이 오후에 다가온다. 밤이면 깊고도 외로운 겨울이 찾아왔다. 쌀이나 옥수수가 자라는 사이, 산기슭의 나무와 각종 식물은 이들의 식량이요, 약이요, 생명이었다. 해마다 절반은 뿌연 안개로 베일에 싸인다고 했던가. 신비에 가까운 마을이 바로 사파였다.

한나절 트레일은 사파 시내로부터 큰 마을로 연결된다. 보통 라오차이(Lao Chai)-타반(Tavan) 혹은 깟깟(Cat Cat) 코스가 인기다. 우린 전혀 다른 하우타오(Hau Thao)행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베트남에 목말랐다. 오토바이와 단체 관광객, 투어, 그리고 ‘Hello’란 호객 행위는 결코 없는 곳이기를 바랐다.

천연 인디고 염색으로 푸르게 멍든 흐몽족의 손.
천연 인디고 염색으로 푸르게 멍든 흐몽족의 손.
꼭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옥수수와 우산을 이리 연결하듯이.
꼭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옥수수와 우산을 이리 연결하듯이.

시내에서 내리막길을 향하던 트레일은 라오차이와 길이 갈리면서 성급한 오르막이다. 시내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몽 여인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 자리를 산과 구름이 채운다. 1시간 전의 사파 시내와 대치되는 풍경이다.

마사지 숍 대신 목가적 풍경이, 오토바이 엔진 대신 바람이, 고동치는 대나무 숲 소리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손에 잡히지 않는 대나무의 굵기에 놀라고, 쇠똥을 피해 풀숲을 성큼성큼 걸어가 두 팔로 바람을 맞이하는 일. 좌로는 반질반질 햇빛을 잘 먹은 초록빛 풍경화요, 우로는 협곡과 농경지의 변주였다. 산의 굴곡대로 테를 두른 트레일의 앞길은 한 치 앞도 안 보였다. 앞서 걷는 자는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 구름 속에서 간혹 소수 민족이 터덕터덕 걸어 나왔다. 그들은 ‘hello’ 대신 그저 옅은 미소를 내어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하늘로 열려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하늘로 열려 있다.

제법 마을 행색을 갖춘 곳에 닿았다. 어느 부족이 사는지는 빨랫줄의 옷이 답했다. 인디고로 염색된 가운이라···. 블랙 흐몽족의 마을이었다. 흐몽족은 대부분 19세기 중국으로부터 이주한 베트남의 대세 소수민족이다. 블랙과 화이트, 레드, 그린, 플라워 등 다양한 흐몽족 중 블랙 흐몽족이 막강하다.

몇몇 여행자 그룹이 최적의 전망대에서 식사 중이었다. 마을 이름은 사셍(Sa Seng), 내심 기대했던 종착지인 하우타오가 아니었다. 무심한 풍경에 다리 힘이 쫙 빠졌다. 바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미는 딸의 찰진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구름에 걸터앉은 노파는 기인임을 뽐냈다. 입과 눈으로만 장사하고 바늘을 놓지 않는 손은 다음 행상을 준비했다.

엉덩이를 쭉 빼고 허리를 낮추며 가리키는 그곳엔 천국이 있을까.
엉덩이를 쭉 빼고 허리를 낮추며 가리키는 그곳엔 천국이 있을까.

“계속 계속 가다가 두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내려가.”

이어지는 트레일은 산 깊숙이 촘촘하게 흐몽족이 사는 풍경이다. 말린 벼 사이로 술래잡기하거나 꽃을 수집하는 아이들의 동화가 이어졌다. 다만, 갈림길의 기준을 알지 못했다. 그리도 원하던 정적이 공포에 가까워진 순간, 허벅지가 떨렸다. 싸늘한 가을 날씨로 변한 오후였다.

산에서 뚝 떨어뜨릴 셈인가. 급강하하는 오른쪽 진흙탕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빛 대신 뿌연 구름과 어둠이 먼발치의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 안에 시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란 기세도 한풀 꺾였다. 몸은 내려가는데 마음은 다시 돌아가는 게 옳다고 애걸했다. 그 전쟁 끝에 앞선 여행자의 꼬리를 밟았다. 폭포수 앞 바위였다. 녹초가 된 여행자와 달리 흐몽족 가이드 무리는 명랑했다. 욕실용 슬리퍼를 신고 돌길 틈을 달리며 행상을 하고, 문자 메시지를 하고, 전화기에 깔깔댔다.

하우타오행 트레일에서 숨은 여행자의 집결지는 폭포수 앞이었다.
하우타오행 트레일에서 숨은 여행자의 집결지는 폭포수 앞이었다.
흑돼지와 늘 반대되는 방향으로 걷게 되는 트레일.
흑돼지와 늘 반대되는 방향으로 걷게 되는 트레일.
아이를 업은 흐몽족
아이를 업은 흐몽족
빛이 강림하듯 위기의 시간에 흐몽족이 우리에게로 찾아왔다.
빛이 강림하듯 위기의 시간에 흐몽족이 우리에게로 찾아왔다.

어떻게든 되는 것이었다. 공사 길을 피해 다시 산으로 향하던 우릴 흐몽족이 구원했다. 스무 살을 조금 넘긴 그녀의 등은 갓난아이 차지다. 늦은 시각이라 사파 시내로 가는 오토바이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일명 콜택시였다. 하우타오의 마을 어귀에서 세옴(xe oem, 오토바이 택시)이 우리 앞에 섰다. 흐몽족과 여행자의 뜨거운 포옹이 작별 인사였다. 세옴은 타반을 거쳐 라오차이, 그리고 익숙한 사파 시내로 돌진했다. 샛노란 다랑이 논이 벅차게 스쳐 갔다. 다음은 좀더 길게 시간을 안배할 것이다, 홈스테이도 할 것이다. 아, 그녀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성큼 안개 낀 가을이었다. 사파로 돌아간 듯 방부된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숨은 마음이었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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