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쉼터 도움받은 60대女
“건어물 투자하면 돈 벌 수 있다”
원장 등 속여 억대 챙기고 잠적
피해자가 발견… 1년 만에 체포
“수배 중인 사기범이 버스를 타려고 합니다.”
전남 신안군에서 수산물 유통업을 하는 최모(30)씨는 이달 초 늦은 밤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1년 가까이 찾아 헤매던 박모(65ㆍ여)씨를 우연히 발견했다. 최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고 11개월에 걸친 박씨의 도피생활도 끝이 났다. 건어물가게를 운영하던 박씨는 지난해 8월 최씨에게서 생선 2,200만원어치를 건네 받고서 대금을 주지 않았다. 최씨처럼 비슷한 수법으로 박씨에게 속은 이는 13명. 피해액은 2억3,000여만원에 달했다.
박씨는 전과자였던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다. 사기죄로 복역한 박씨는 2014년 10월 출소 후 서울 은평구 A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나이에 특별한 직업도 없던 그에게 쉼터 이모(65ㆍ여) 원장은 숙식을 제공하고 요양병원 간병인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물심양면 도왔다. 하지만 박씨는 지난해 8월 쉼터 근처에 건어물 상점을 차리면서 검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40년 동안 서울 중부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투자하면 경남 삼천포에서 싼 값에 사 온 멸치를 되팔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이씨로부터 1,000만원을 빌렸다. 박씨 말에 속아 넘어간 이씨는 쉼터를 운영하며 알게 된 다른 노인들에게도 그를 소개했다. 박씨는 또 건어물가게를 두 달 간 운영하면서 전남 완도 등의 어물 도매상들에게 접근해 전복, 황태포 등 3,000여만원 상당의 현물을 받아 챙겼다. 박씨의 말에 속아 넘어간 교도소 동기도 4,000만원을 뜯겼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박씨는 가게를 처분한 뒤 돌연 잠적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박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추적했지만 피해자 최씨 눈에 띄기 전까지 행방은 포착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 박씨는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은 채 강릉, 울산 등 전국 요양병원을 돌며 간병인으로 숨어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로챈 돈은 빚을 갚고 생활비로 대부분 탕진한 뒤였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박씨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도피행각을 벌인 동안 원장 이씨는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공범이란 오해를 받으며 속앓이를 해왔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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