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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16.10.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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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시 한 편의점 진열대 상품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져 있다. 독자 제공
지난 달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시 한 편의점 진열대 상품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져 있다. 독자 제공

연수 및 특파원 시절을 합쳐 일본에서 5년여를 거주하면서 숱한 지진을 겪었다. 침대를 누군가가 심하게 미는 듯한 느낌에 어찌할 바 몰라 당황했고 거실 천정에 달린 스탠드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천장이 무너지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횟수가 반복되다 보니 웬만한 지진에는 적응이 됐고,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과 이 정도면 진도 얼마인지를 두고 내기를 하는 여유도 생겼다.

지난달 12일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던 날 서울에서도 지진동을 느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진도 2가 채 안됐던 것 같다. 일본이라면 지진 축에도 끼지 못할 규모였지만 당시 받았던 심리적 두려움은 일본에서 느낀 지진 때보다 컸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국이 아니며, 앞으로 일상화한 지진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진에 대비한 우리 사회의 정보 제공 기능이 약한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공영방송 NHK를 찾는다. 사람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지진이 발생하면 NHK는 일단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지진속보를 내보낸다. 지진 진앙에서 발생한 규모, 그리고 그 지진이 각 지역에 미친 진도를 상세하게 보도한다. 이를테면 도호쿠(東北) 대지진 당시 진앙의 규모는 9.0인 반면 이와테(岩手), 미야기(宮城)현 해안지역은 진도 7내외, 도쿄는 진도 5약, 홋카이도는 진도 3~4 등이다. 사람들은 이런 수치를 보고 그간 몸으로 체득한 지진의 진도에 맞춰 대비를 한다.

경주 5.8 지진의 여진이 엊그제 또 두 차례나 발생했다. 지금까지 규모 1.5 이상의 여진만 500차례 가량 되지만 정작 해당 지역의 지진 진도에 대한 정보는 알 길이 없다. 이러다 보니 지진을 겪는 주민들은 늘 진앙의 지진 규모를 자신이 사는 지역의 수치로 치환, 실제 지진의 크기보다 과다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다. 지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거치지 않은 채 원전 허가가 떨어진 정황이 드러나는가 하면, 내진설계가 의무화한 이후 지어진 상당수 건물이 실제로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건설됐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대형 지진이 발생해 규정에 따르지 않은 시설의 안전에 위험이 생긴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그동안 지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국가가 치러야 할 통과의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진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지진에 대비한 예측 가능한 정보 제공과 시스템 구축은 무엇보다 시급히 다뤄야 할 사안이다. 아울러 이미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알려진 건물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도 서둘러야 한다.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진 안전국임을 전제로 기준을 다소 낮게 설계한 시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더 강화한 기준에 따른 보강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는 멀쩡히 운영중이던 시즈오카(静岡)현 하마오카(浜岡) 원전의 가동 중단을 운영사인 주부(中部)전력에 요청했다. 이 일대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쓰나미 보강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주부전력이 이를 수용, 원전 가동을 전격 중단했다. 일본이 유례없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원전 안전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일이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일본에 머물 때 웬만한 지진에는 적응했던 것이 일본 사회의 재난 안전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한창만 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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