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에 내리자 이미 한국어가 낯설어졌다. 대림역 12번 출구로 향하는 기나긴 통로를 지나면 중국이었다. 나는 외국 음식에 낯섦이 없는 박애적 먹보다. 한식을 주식으로 먹는 몸이지만, 즐겨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먹보들과 무리 지어 찾아가곤 했다.
대림동에 처음 찾아갔던 몇 해 전만 해도 한국어 간판이 꽤 보였다. 그곳은 소문을 타고 ‘마라탕’과 ‘양다리 구이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양꼬치 열풍이 여전히 불고 있을 때다. 끔찍할 정도로 얼얼한 양념이 듬뿍 들어간 마라탕, 아니면 불판 위로 큼직한 양다리 한 짝을 매달아 빙빙 돌려 가며 다 익은 겉살부터 기다란 칼과 포크로 베어 먹는 재미를 보려 대림동에 발을 들였다. 양다리는 본래부터 한국에서 사용되던 부위가 아니다. 중국에서 온 ‘동포’들의 취향에 맞춰 개발된 서울의 신메뉴다.
한중 손님 반반 양갈비 굽다
“원래 양고기가 낯설던 한국사람들은 양다리는 더욱이 잘 몰랐지만, 싸고 푸짐해서 중국 동북지역 어디에서나 먹는 부위죠. 서울서 처음으로 양다리 구이집을 냈습니다.” 2007년 입국해 닥치는 대로 막일부터 시작했다는 ‘줘마양다리구이’ 김만영 사장은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성공 신화다. 중국에 있을 때도 10여년 식당을 했던 터라 수완이 좋다. 이제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도 양다리 구이라는 특이한 메뉴가 제법 유명해졌다. 저녁이면 한국인들이 식당 손님의 절반 이상이다. 그리고, 김만영 사장과 같은 ‘차이나타운 드림’을 꾸는 이들이 낯선 나라에서의 막일에 치이고 채인 몸을 끌고 와 나머지 절반 자리를 채우고 양갈비를 굽는 풍경이 매일 밤 펼쳐진다. “아무래도 막일을 하니까” 기름기가 많은 양갈비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언젠가부터 가리봉동, 구로동, 대림동으로 이어지는 넓은 구역에선 중국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흔히 들려오게 됐고, 대림동은 그 낯선 동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가리봉동 재개발이 대림동의 차이나타운화를 가속시켰다. 재개발로 인해, 그리고 더 나은 교통 조건을 찾아 이 땅의 중국 동포들이 몰려들어 대림동은 어느새 ‘차이나타운’이라는 형용이 훨씬 잘 어울리는 동네가 됐다. 이제 대림역 12번 출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중국이다. 한국어가 귀하다. 옷깃을 스치는 이들 역시 대개 중국 출신들이다.
12번 출구부터 이어진 유흥의 거리는 아케이드화 등 현대시설을 아직 갖추지 않은 골목 시장에서 생활의 국면으로 이어진다. 양다리 구이 중에서도 마지막에 먹게 되는 종아리 부분의 아롱사태살이 가장 맛나다는 걸 깨닫게 될 때쯤엔 노변을 가득 채우는 길거리 음식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향취가 골목에 가득하다. 노상 푸드코트가 된 명동과 비슷한 박력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 중국식이라는 점이다. 찐옥수수며 고구마, 오징어구이는 기본, 거기에 냉면 부침은 발군이다. ‘연변냉면’이라고 부르는 쫄면도 아니요, 중면도 아닌 노란 면을 철판에 지글지글 눌러 부쳐 중국식 양념에 무쳐 주는 부침개를 닮은 이 간식거리는 양다리로 부른 배를 두드리다가도 하나 꼭 손에 쥐게 하는 맛이다. 고소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이 길거리 음식을 연신 부쳐내는 젊은 청년들은 골목 안쪽에서 국수집도 하고 있다고 했다.
대림시장은 중국동포의 부엌
좀더 익숙해지자 일찍부터 대림동에 당도해 유흥가 안쪽의 시장통을 둘러보고 장까지 보는 여유도 생겼다. 대림중앙시장이다. 150m 남짓한 이 시장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동네 시장이었지만 차이나타운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중국 특화시장마냥 변했다. 시장 초입의 식재료상 석수식품을 비롯한 소매점에서는 못 구할 중국 향신료, 양념, 식재료가 없다. 안산이 동남아권 이주자들의 냉장고라면, 대림은 중국 이주자들의 냉장고라고 한다.
20여년 시장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남문떡방앗간 조창묵 사장의 가게 역시 오랫동안 떡을 팔고 참기름, 들기름을 짜거나 말린 고추며 곡식을 빻아주는, 여느 시장 떡방앗간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지만 동네가 변했다. “70%가 중국인 주민들이에요. 옆 동네 가리봉동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대림으로 모여들었고, 원래 이 동네에 살던 젊은 부부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나가면서 차이나타운화가 더 빨라졌지요. 초등학교에 가보면 외국인 자녀가 워낙 많아서 기역 니은부터 가르치니 이미 한글을 거의 떼고 입학하는 한국 아이들에겐 진도가 안 맞는다는 거죠. 터줏대감들은 다 그대로 남았지만 이젠 거의 중국이라고 봐야죠. 시장에 점포가 나오면 중국 동포들이 웃돈을 주고라도 들어오거든요. 점포 하나가 잘되면 금세 가게를 두세 곳으로 늘리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는 “그래도 중국 동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시장에 활기가 돌고 매출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조창묵 사장의 떡방앗간에서는 몇 해전부터 새로운 품목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흔히 베트남 고추라고 부르는 조그맣고 매운 고추다. 점차 중국 동포로 시장통이 채워져 가며 찾는 이가 많아 들여놨단다. 이를 사용하기 쉽게 채쳐둔 것도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 그 역시 신상품으로 팔기 시작한 지 꽤 됐다. 어물전에도 취급하지 않던 ‘신상’이 들어와 있다. 붕어 등 민물생선이나 중국의 새우, 가재다. 역시 찾는 사람이 늘어서 들여 놓은 물건이다.
하물며 방앗간이나 어물전도 변했는데, 다른 상점들은 변화의 정도가 훨씬 극단적이다. 시장 안에서 오랫동안 영업하던 두부가게는 중국 동포가 인수했다. 보통 두부도 만들어 팔지만 주력 상품은 피두부다. 중국에서 워낙 즐겨 쓰는 식재료이고, 공장 생산 제품만 있던 터라 갓 만들어 파는 피두부를 사려는 줄이 끊임 없이 이어진다. 반찬가게도 언뜻 보면 같지만 쇼케이스 안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오징어채처럼 생긴 것은 잘 들여다 보면 소 힘줄이고, 감자볶음인가 싶었던 것은 피두부 무침이다. 무말랭이라고 하는 것도 익히 알던 무말랭이보다 통통하고 짤막하게 잘라놨다. 이런 연변식 밑반찬들이 반찬가게 쇼케이스의 절반이 넘는다. 기름지고 매운 양념에 무치거나 짭짤한 간장에 푹 담근 이 반찬들이 꽤 입에 잘 맞는다. 나들이 온 중년의 한국 여성들이 하나하나 시식을 해보고는 맛나다며 한 보따리 사갔다.
족발, 채소, 빵…닮은 듯 색다른 맛
족발집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풍기는 향이 영 어색하다. 우리가 오향을 넣는다고 넣은 족발보다 훨씬 향취가 강한 중국식 족발을 판다. 속이 꽉꽉 찬 순대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역시 알던 것과 조금 다른 중국식이다. 돼지 귀부터 삼겹살찜에 닭발, 오리 통구이까지, 중국식 양념으로 박력 있게 무쳐 놓은 육가공품만 모아 파는 가게도 규모가 꽤 크고 시장 안에 여럿이다. 소시지가 여기저기 걸려있기도 하다. 손수 만든 중국식 소시지다.
채소 가게 풍경 역시 이색적이다. 애호박이나 대파까지는 한국 것과 똑같다. 고수까지도 잘 알겠다. 그런데 고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더 가녀린 영채는 대림중앙시장에서 실물을 처음 봤다. 원래 한국에서도 나던 채소지만 이북에서 많이 먹는 채소라고 한다. 만주벌을 지나 중국에서도 흔히 먹는 채소다. 길쭉한 한국 오이도 있지만 뭉뚝하고 통통한 중국 오이도 함께 판다. 한국 오이보다 질감이 단단해서 볶음 요리에 쓰기 좋다. 생강이라고 해서 파는 것은 한국의 강렬한 생강보다 크고 향이 부드러운 중국 생강이다. 양파가 쌓여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작은 샬롯도 흔하게 쌓여 있다. 싱싱한 줄기콩만 해도 생경한 종류가 여럿이고, 고추와 피망의 중간 모양새를 하고 있는 중국 고추도 색과 향이 다양하다.
빵집 역시 애초부터 많이도 생겼다. 우리가 아는 빵이 아니라 중국식 빵과 만두를 판다. 줘마양다리구이 김만영 사장은 “교포들이 빵 하나를 사먹더라도 대림으로 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식 빵은 우리가 먹는 꽃빵이 민망해질 정도로 커다란 것이 찐빵처럼 생겨서 속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물론 달큼하게 겉을 한 겹 바른 간식용 빵도 지천이요, 방석만한 총유병은 지나는 사람마다 한 쪽씩 사가는 인기 간식이다. 모두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든다.
다시 방앗간으로 돌아와 쌓여 있는 말린 고추 중 중국산 고추를 들여다 본다. 중국산 고추는 이곳에서 국내산일까, 수입산일까? 이미 대림중앙시장은 한국에 유입된 중국인들이 식생활을 온전히 의탁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대림 차이나타운의 맛이 만화경처럼 펼쳐졌다. 어울려 사는 덕분에 여행하지 않고도 다른 문화의 맛을 쉽게 보는 2016년의 서울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이석영 포토그래퍼(Afr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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