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시험’ 제작팀 지음 | 북하우스 펴냄
고비마다 한국인은 시험(試驗)에 든다. 유치원 입학부터 입사와 승진까지 시험으로 점철되는 삶이다. 생존과 출세 여부를 시험 점수가 가름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정답 맞히기에 바쁘다. 의심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한 번쯤 따져 보자. 시험은 옳은가, 시험이 정답인가.
시험은 현상이다.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사회마다 양상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시험은 ‘나쁜 경우’다. 본질 가운데 선별 수단이자 순치 도구라는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한 사회가 이곳이다. 순응하는 자가 추려지고 오직 점수가 목적이다 보니 부정이 횡행한다.
실력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고득점은 테크닉으로 가능하다. 패턴에 얼마나 익숙한지가 성패의 관건이다. 시험의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사교육시장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다. 시험이 평하는 능력은 단 하나. 시험을 얼마나 잘 보느냐다. 시험을 위한 시험은 무용하다.
책은 서울대 우등생의 공부 비법을 소개한다. 필기와 암기, 수용적인 학습 태도다.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이런 경향은 지속된다. 시험의 암묵적 장려 아래서다. 미국 대학은 판이하다. 비판적ㆍ창의적 사고력을 서울대가 죽이는 반면 미시간대는 살린다고 책은 꼬집는다.
문제는 정답을 찾는 교육이다. 주어진 답만을 찾도록 훈련된 시험형 인재가 미래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언한다. “‘정답 너머’의 공부를 요구하지 않는 교육이 학생들의 예기(銳氣)를 꺾어 놓는다”(권재원 서울 성원중 교사)는 것이다.
좋은 시험은 없을까.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는 객관식이 없다. 수학ㆍ과학을 제외하면 패턴도 없다. 채점자는 답안의 적절성ㆍ논리성을 평가한다. 선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어서다. 바칼로레아가 추구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력의 배양과 수험생의 성장이다.
책의 원본은 지난해 방송된 EBS 6부작 다큐멘터리 ‘교육 대기획-시험’이다. 방송 다큐가 그렇듯 백과사전식으로 시험의 모든 것을 살폈다. 조사의 동기는 회의(懷疑)였다. 연구 분석과 실제 실험, 현장 탐사, 전문가 인터뷰 등 꼼꼼한 취재로 시험의 속성을 통찰해냈다.
정답이 있는 시험의 유효기간은 이미 지났다고 프로그램을 만든 장후영 EBS PD는 말한다. “정답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게 반드시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만 있는 교육은 나쁘다. 무엇을 위한 정답 찾기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그 정답이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눈 팔지 않고 이정표만 따라가다 결국 당도하는 곳은 벼랑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책의 경고다.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인은 공정성에 집착한다. 남에 대한 불신 탓이다. 시험 만한 게 없다. 회의를 지울 수 없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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