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0월 13일
실패를 겁내지 말고 실패에 굴복하지도 말라는 말은 사실 공허하다. 겁내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려면 의지와 기량 외에도 필요한 게 많다. 나를 떨어뜨린 말 등에 다시 올라타려면 우선 부러지지 않은 다리가 필요하다. 실패에는 대가가 따르고, 도전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주눅들지 말라는 건 조금은 낭만적이다. 주눅들어 있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실패는 다른 실패를 모면하게 해주는 지침이 될 수 있고,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실패는 그러므로 공공재다. 어떤 실패, 예컨대 오븐에 구운 빵이 돌멩이 같은 쿠키가 돼버린 것 같은 실패는 악의 없는 웃음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핀란드 헬싱키의 학자와 학생, 벤처 투자자들이 2011년 10월 13일을 ‘국가 실패의 날(National Failure Day)’로 선포한 것은 조금은 절박한 이유에서였다. 노키아 외에는 뚜렷한 제조업이 없는 데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노키아의 미래 역시 불투명해졌고 인구 구성은 점점 노령화하는 현실. 그들은 핀란드가 지금처럼 근사한 복지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20만 개의 좋은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걸 정부나 대기업에만 맡겨둬서는 답이 없겠다고 판단했고, 그 돌파구를 벤처 창업 같은 새로운 도전에서 찾고자 했다. 그들 ‘알토스(Aaltoes) 팀’은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실패의 긍정적 의미를 일삼아 홍보했다. 핀란드 로비오(Rovio) 엔터테인먼트가 게임 ‘앵그리버드’로 성공하기까지 무려 52개의 게임을 출시했다가 망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 18세의 호주 여성 니키 더킨(Nikki Durkin)이 옷장에 옷은 가득한데 정작 입을 옷은 없는 현실에서 착안해 중고 의류를 사고파는 무한 옷장 ‘99 Dresses’를 창업했다가 좌절한 사연 등, 조앤 롤링과 빌게이츠의 실패담 등. 그들의 캠페인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고,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들과 기업가들이 가세하면서 범유럽ㆍ범세계의 운동이 됐다. 그렇게 오늘이 ‘국제 실패의 날’이 됐다.
시작을 시민이 했듯이, 확산시킨 것도 엄밀히 말하면 네티즌들이었다. 그들은 저 ‘실패’를 사업가들만 가지게 하지 않고, 자잘한 일상의 에피소드로 확산시켰다. 오늘 트위터 해시태그‘#dayforfailure’나 유튜브‘fail’등을 검색하면 싱싱하고 다양한 실패의 사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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