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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소설 나부랭이…뽕쟁이하고 뭐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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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소설 나부랭이…뽕쟁이하고 뭐가 달라”

입력
2016.10.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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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를 낸 성석제 작가. 문학동네 제공
신작단편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를 낸 성석제 작가.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성석제가 신작 단편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를 냈다.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보통 사람의 이야기 ‘투명인간’ 이후 2년 만이다.

책에는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묶였다. 독특한 제목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따온 것으로,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무기력과 달관 사이의 제목처럼 이번 소설집에는 대단한 환희나 통렬한 절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평범한 생의 뒤통수를 강렬하게 때리는 하나의 사건이 매 이야기마다 엮여 들어간다.

표제작은 동성애자 친구를 둔 이성애자 남성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만인의 똥개’로 불리며 혹독한 삶을 살아온 ‘너’는 가까이 하기엔 찜찜하지만 완전히 끊어버릴 수 없는 존재다. 요리를 잘 하고, 가난한 중에도 시와 음악을 향유하며, 술자리에선 벌칙으로 귀뺨을 때리는 대신 노래를 부르는 ‘너’는 동시대의 야만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것만 같은 그 모성. ‘나’가 결혼을 하고 외도를 하고 이혼을 하며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너’는 정상급 재불 화가가 되어 금발의 동성 애인과 함께 나타난다. ‘너’는 더 이상 동성애자임을 감추지 않고 ‘나’는 더듬거리며 “언제부터”냐고 묻는다.

“너희,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성애자들은 꼭 그렇게 묻더라. 언제부터 게이였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해온 거냐. 나를 볼 때마다 몰래 흥분한 거 아니냐. 기분 더럽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소설집의 처음을 장식하는 ‘블랙박스’에서는 창작의 샘이 말라버린 중년 작가와 동명이인의 남자가 등장한다. 카센터에서 작가의 차에 블랙박스를 달아줬던 남자는 처음부터 형님이라 부르겠다며 온갖 수발 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쓰러진 작가 대신 그가 완성한 소설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엿보이고, 작가는 남자에게 본격적으로 소설 대필을 맡긴다. 한동안 이어지던 밀월 관계는 그러나 “문학에 목숨을 건 적”이 있는 작가와 소설로 출세하려는 남자의 의견대립으로 틀어진다. 남자는 밑바닥의 거친 언어로 작가를 공격한다.

“그깟 소설 나부랭이 못 쓰겠네 안 써지네 하면서 살려달라고 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니 단물 쪽 빨아먹고 나서는 싸늘하게 배신을 떄리네 (…)이것들 뽕쟁이하고 뭐가 달라, 저 혼자 골방에서 약 빨다가 약발 다 떨어지면 밖으로 벌벌 기어 나와가지고는 울고 짜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야, 씨발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필명으로라도 소설 써가지고 니들 동네 전부 말아먹을 수 있어”

작가의 자조는 지금, 여기를 향한다. 야만의 땅에서 태어나 기만의 공기를 오래 흡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릴없이 오염된 인간들. 연민도 비난도 없이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작가는 다시 한 번 조용히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올해는 작가가 1996년 첫 단편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출간한 지 20년 되는 해다. 출판사는 20주년을 기념해 성석제의 초기 단편들을 가려 뽑은 걸작 단편선집 ‘첫사랑’을 동시에 출간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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