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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영웅 되고 싶은 자, 돛대에 손을 묶어라

입력
2016.10.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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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숱한 난관 중 하나는 사이렌이라는 마녀들이었다. 사이렌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그 노래에 홀려서 노래를 따라갔고, 기어코 죽고 말았다. 그 때문에 사이렌이 지키는 바닷길을 지나야 하는 뱃사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귀를 막아야 했다.

오디세우스도 고향으로 가려면 이 바닷길을 지나야 했다. 그 역시 귀를 막고 바다를 건너라는 권고를 받지만,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이렌과 한 판 결투를 결심한다. 그런데 결투를 위한 그의 행동은 도무지 전쟁 영웅답지 않았다. 칼을 잡아야 할 자신의 손을 돛대에 꽁꽁 묶게 하더니, 뱃사공들에겐 자신이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끈을 풀어주어선 안 된다고 사정까지 한다. 어디에도 영웅의 이미지는 없었다.

배가 출항하고 얼마 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트로이와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알고 있지.” 귀를 막아 노래를 듣지 못하는 뱃사공들은 덤덤하게 노질을 하고 있었지만, 노래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도무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정신을 다잡아도 마음을 파고드는 노래가 사무쳤다. 자신이 트로이에서 벌인 치부를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수치심에 견딜 수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넘겨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내 치부는 다 가리고 남의 치부를 모두 알 수 있다면 조잡하게 카카오톡을 도청할 일도 없을 것이고, 민간인 사찰로 정권이 곤경에 빠질 위험도 없을 것이다. 한 번의 수치심만 참아내면 커다란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이 치명적인 유혹 앞에 그도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를 묶고 있는 끈을 풀라고 호통도 치고 애원도 해보지만, 뱃사공들은 더욱 조여 맨다. 모두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자 사이렌은 자살한다. 세상에 평화가 당도한 것이다.

세상의 평화를 성취한 것은 피 묻은 칼이 아니라, 칼을 잡아야 하는 바로 그 손을 돛대에 묶은 냉철한 이성이다. 여기에서 이성은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을 하나로 담아낸 진선미의 총화로서 이성이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만들어진 계산적인 이성과는 다르다.

요즘 집권여당과 고위관료들을 보고 있으면 노래에 홀려 바다를 헤매던 뱃사람들이 연상된다.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 떠오르는 일본 만화영화가 있다. ‘센과 치히로’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의 부모는 남의 집에 들어가 주인 허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음식을 먹어대다 돼지로 변한다. 돼지가 되어서도 돼지가 된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 먹기만 한다. 그 장면이 자꾸 오버랩 된다. 그런데 현실에선 그 무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위협적이다. 세월호 유족에게 했던 그대로 백남기 씨 유족에게 조롱을 퍼붓고 기뻐하는 이들. 모두가 거짓이라 해도 권력을 틀어쥐고 아니라고 하는 이들. 숱한 사건과 사고가 터지지만, 모든 정보를 움켜쥐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질리게 해서) 입도 뻥긋 못하게 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단식을 한다고 소란을 피우며 비명을 질러댄다. 그 사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이 사람들이 혹시 무슨 노래를 들은 것은 아닐까. “나는 네가 한 일과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있지.” 그래서 모두 유혹에 빠진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닌가. 이성을 잃고 유혹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찌 저렇게 방향을 잃고 내달리기만 할까. 자신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의 눈과 귀는 오로지 한 곳만을 향하고 있다. 아마 거기 어디에서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게다. 도대체 국민은 언제까지 귀를 막고 견뎌야 하는 걸까.

영웅이 되고 싶은 자, 돛대에 손을 묶어라.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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