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연맹이 심판에게 돈 봉투를 심부름한 현직 골키퍼 코치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뒤 비난 여론을 의식해 조용히 덮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연맹 상벌위원회는 지난 달 30일 클래식(1부) 전북 현대에 승점 9점 감점, 1억 원의 벌금 징계를 내렸다. 그날 또 한 건의 징계를 더 다뤘는데 챌린지(2부) 소속 ㄱ구단의 골키퍼 코치 A씨를 경고 처분했다.
A씨는 과거 경남FC의 심판 매수 사건 관련자다. 경남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전 대표이사가 B코치를 통해 20여 회에 걸쳐 4명의 심판에게 6,400만 원을 줘 작년 12월 상벌위에서 승점 10점 감점, 벌금 7,000만원 징계를 받았다. A씨는 선배인 B코치의 지시로 이 중 한 차례 심판에게 돈을 건네는 전달자 역할을 했다.
경고는 A씨에게 내려질 수 있는 징계 유형 중 가장 가벼운 처분이다. 상벌위원들은 A씨가 돈을 단 한 번 전달했고 선배 코치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점 등을 감안했다고 한다. 상벌위에 출석한 A씨도 “돈 심부름만 했을 뿐 사용처는 전혀 몰랐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심판에게 돈 봉투를 주며 목적을 몰랐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A씨는 B코치처럼 적극적으로 매수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축구계 위계질서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 실효성이 없는 경고 처분은 너무 미온적인 처리였다는 지적이다. 심판에게 돈을 전달했던 사람이 아무 제약 없이 프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상벌위는 안산 경찰청축구단의 이흥실 감독과 손정현이 경기 도중 주심의 페널티킥 및 퇴장 판정에 항의하고 약 9분 간 경기 재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7일 이 감독에게 5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300만원, 손정현에게 3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150만원을 부과했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경기 도중 심판에게 항의한 행위가 심판에게 돈을 전달한 행위보다 더 중하게 처벌받은 셈이다.
더구나 프로연맹은 이 사실을 덮기에 급급했다. 상벌위 결과를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해오던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그날 전북 징계에 대해서는 상벌위원장이 직접 브리핑까지 하고도 A씨 징계 결과는 알리지 않았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심판 매수 사건에 연루된 A씨가 구단에 취직할 수 있었던 배경도 황당하다.
연맹은 작년 말 경남 사건 상벌위를 열고도 A씨를 징계하지 못했다. 당시 A씨는 경남 소속이 아니어서 연맹이 징계를 내릴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연맹은 최상위기구인 대한축구협회에 징계를 의뢰했는데 축구협회는 산하 연맹에서 먼저 징계해야 협회도 할 수 있다며 다시 돌려보냈다. (본보 2016년 5월 25일 ‘축구 수뇌부의 헛발질이 심판 매수 화 키웠다’ 참조) 프로연맹과 축구협회가 서로 다른 법리 해석을 하며 차일피일 징계가 미뤄지는 사이 A씨는 작년 말 챌린지 소속 ㄴ구단의 골키퍼 코치로 취직했다. A씨가 경남 시절 심판 매수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ㄴ구단은 곧바로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자 A씨는 약 한 달 전 다시 ㄱ구단과 골키퍼 코치 계약을 했다. ㄱ구단은 “골키퍼 코치가 급히 필요해 올 시즌까지만 단기 계약을 했다. (경남 시절 일은)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돈만 전달했을 뿐 용처는 몰랐다’고 주장하더라. 프로연맹에도 질의하니 과거 행적이 부담스럽지만 코치 등록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A씨가 ㄱ구단 소속이 된 지금에야 프로연맹 상벌위가 비로소 징계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축구협회는 상벌위 당시 프로연맹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계를 못 내렸던 세 명의 전직 심판, 두 명의 전직 심판위원장, B코치 등에 대해 1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뒤늦게 영구제명 조치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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