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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옛 모습 한 곳에서 본다

입력
2016.10.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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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민속박물관 사진전

‘오디세이, 광주 120년’전 개최

도청소재지 개발과정 한 눈에

그림 1광주 동구 금남로 현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옛 전남도청 정문. 광주시립박물관 제공
그림 1광주 동구 금남로 현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옛 전남도청 정문. 광주시립박물관 제공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은 오는 13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오디세이, 광주 120년’기획전시회를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2016년은 전남이 행정중심지가 천년 목사골 나주에서 광주로 옮겨온 지 2주갑(120년)이 되는 해다. 이번 전시회는 광주가 도청소재지로 확정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회갑을 두 번 지나온 세월 동안 호남의 웅도로 우뚝 선 발전과정을 되돌아보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회는 총 4부로 구성됐으며 200여점의 자료가 소개된다.

제1부‘1896년 광주’에서는 광주가 오늘날 광주전남 인구의 40%, 호남권 인구의 30%가 모여 사는 거대도시로 발전한 계기인 1896년에 주목한다. 조선시대 광주는 전라도 50여 고을 중 중간 규모로 인구는 3만명에 불과해 전주 7만명, 나주 6만명에 절반 수준이었다. 1986년은 도청이 나주에서 광주로 옮기면서 행정 교육 상업의 심장부로 변모했다. 전남도청은 처음엔 현재 금남로 1가 전일빌딩 자리에 있었고 현재의 옛 전남도청 건물은 1930년에 신축됐다.

그림 2 광주 동구 광산동 시절인 1930년에 신축된 도청 모습. 광주시립박물관 제공
그림 2 광주 동구 광산동 시절인 1930년에 신축된 도청 모습. 광주시립박물관 제공

제2부 ‘일제강점기의 충장로와 광주천’에서는 광주가 도청소재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근대도시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1930년대 충장로의 유명 상점의 상품 등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도시개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광주천의 변천사도 볼만 하다.

제3부는 ‘1960년대의 금남로’에서는 광주가 현대도시로 도약하던 60년대 도로확장과 택지개발에 초첨을 맞췄다. 경양방죽 매립과 태봉산 철거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60~70년대에는 인구가 30만명에서 7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수돗물 해결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4부 ‘도시의 확장, 제1순환도로’에서는 1970년에 착공, 88년에 완공된 제1순환도로를 화두로 70년대 이후 광주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70년대는 주택난과 연로난이 최대 관심사였다. 66년 등장한 광주 최초의 미도아파트부터 대규모 운암동 주공1단지로 이어지는 주택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주인택 광주민속박물관장은 “전남도청 소재지가 나주에서 광주로 결정된 이후 120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며 “도시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통해 광주의 미래를 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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