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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쫓으려... 화물차 '마약 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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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쫓으려... 화물차 '마약 핸들'

입력
2016.10.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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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간 8차례 환각 운행

첩보 입수한 경찰에 덜미

2년 전에도 무더기 적발

통행료 아끼려 야간 선호

졸음운전 치사율 평균치 10배

노조 “화주 최저가입찰이 원인”

표준운임제 도입 주장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5톤짜리 화물트럭을 모는 김모(50)씨는 2주를 꼬박 일해야 겨우 하루를 쉴 수 있다. 충남 당진에서 포항, 부산 등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오가며 철강 화물을 실어 나르는 탓에 늘 피로를 달고 산다. 그런 김씨에게 화물운송 영업소장 김모(61)씨는 “이걸 먹으면 졸음이 사라질 것”이라며 피로회복제를 건넸다. 실제 소장이 내민 피로회복제를 복용한 뒤 졸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김씨의 원기를 회복시켜 준 특효약은 사실 필로폰과 대마 등 마약류였다.

얼마 뒤 마약임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0.03g으로 시작된 필로폰 1회 투약량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마약에 손댄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여덟 차례나 환각 상태로 고속도로를 질주했던 김씨의 범행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통이 원활한 심야에 일을 해야 기름값도 아끼고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김씨와 소장 김씨, 이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자동차정비공장장 정모(47)씨 등 7명을 마약류 관리에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부 화물차량 운전자들이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국을 누비는 대형화물차 기사들의 일상은 한 마디로 ‘졸음과의 사투’다.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화물을 운송하려면 쉼 없이 운전을 해야 한다. 각종 피로회복제와 각성제를 먹는 등 잠을 쫓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누적된 피로를 좀처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 결국 김씨처럼 마약에까지 손을 뻗는 현실이다.

2014년에도 부산에서 견인차량 운전사와 트럭기사들이 졸음과 피로를 쫓는다며 상습적으로 필로폰을 투약하다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광수대 관계자는 “마약은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운전 시 졸음보다 몇 배나 위험하다”며 “이틀 정도는 피곤을 잊고 운전할 수 있으나 어느 시점에서 무기력증이 밀려와 대형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화물차에는 많은 물건이 실려 있어 잠깐의 졸음운전도 막대한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 8월에는 전남 여수에서 트레일러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상자 25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화물차 운전자의 교통사고 치사율도 평균치보다 훨씬 높다. 교통안전공단 통계를 보면 국내에 등록된 전체 차량(2,000만대) 중 화물차 비중은 2.2%(44만대)에 불과하나 화물차 운전자의 최근 3년간 고속도로 졸음운전 치사율은 22.4%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체 치사율(2.3%)보다 10배 높은 수치다.

아찔한 사고 위험에도 화물차 기사들이 심야 운전을 고집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야간(오후 9시~오전6시)에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반값이다. 13년 경력인 화물트럭 기사 황모(48)씨는 “서울~부산을 밤에만 운전하면 연간 200만원을 아낄 수 있다”며 “잠만 이겨낼 수 있다면 솔직히 마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이라고 털어놨다.

화물차 기사들이 휴식 의무를 법제화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믿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사업용 차량 운전자가 4시간 이상 연속 운행 시 최소 30분 휴식’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트럭 운전사는 “4시간마다 30분씩 보는 손해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 줄 리 없어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동진 화물연대 사무국장은 “화주ㆍ운송주선업체들이 여전히 최저입찰제를 고집해 운임이 내려가다 보니 기사들이 과적과 졸음운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입찰 체계를 표준운임제로 바꾸고 화물차 기사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도로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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