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치의, 진단서 변경 의사 없어
의무기록에 친필 서명까지 첨부
해당 문구 삭제, 의심받기 충분
작성 레지던트는 ‘병사요?’ 반문
유족에겐 “나는 권한없다” 말해
2. 경찰, 부검영장 집행 명분 잃어
법원의 집행 제한사유 부분 공개
청구 이유 제외해 이중태도 비판
유족엔 3차 공문… 협의시한 늦춰
고 백남기씨를 치료한 주치의가 백씨 사망 직후 작성된 퇴원기록에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을 진단명으로 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같은 날 작성된 사망진단서에는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을 입증할 수 있는 ‘외상성’ 문구가 빠진 ‘급성경막하출혈’만 적혀 외압 의혹이 커지고 있다.
10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백씨 의무기록지를 보면 백씨가 숨진 뒤 작성된 퇴원의무기록 진단명은 ‘(열린 외부 상처가 없는)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이었다. 앞서 백씨가 경찰 물대포를 맞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지난해 11월14일 수술 전 진단명에도 ‘(머리에 외부 상처를 동반한)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기록됐다. 백씨의 의무기록에는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의 친필 서명도 첨부됐다.
하지만 백 교수는 정작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면서 다른 결론을 내렸다. 서울대병원 측은 그간 백씨의 직접사인을 ‘심폐정지’, 중간사인은 ‘급성신부전’, 중간사인에 영향을 끼친 선행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로 밝혀 왔다. 결국 사고 당일은 물론, 백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외상성’이라는 진단을 기록에 남겨놓고도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는 단순히 급성경막하출혈만 근거로 남겨 병사로 판단한 셈이다. 윤 의원은 “외상성 여부에 따라 사망 종류가 다르게 나올 수 있는데도 해당 문구를 삭제한 것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의무기록과 사망진단서 내용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다. 논란과 관련, 병원 측은 “백 교수는 진단서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원칙에 어긋난 표기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내가 주치의였다면 정치적 논란을 제쳐 두더라도 ‘외상성’ 표기를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신경외과 전문의 역시 “의무기록과 사망진단서가 다른 경우도 있으나 사인이 분명한 백씨 사례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망진단서 작성에 외압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는 “사망진단서를 쓸 당시 담당 레지던트는 유족에게 ‘나는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판단할) 권한이 없고 진료부원장과 백 교수 두 분이 상의한 내용을 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며 “그 레지던트는‘병사요?’라며 세 차례나 반문한 끝에 사인을 병사로 체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망진단서 오류를 지적하는 증거가 속속 공개되면서 백씨 압수수색검증영장(부검영장) 집행을 강행하려는 경찰의 명분도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이날 백씨 유족의 부검영장(총 3장) 열람 요구에 이미 언론에 알려진 법원의 집행 제한사유가 적혀 있는 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영장발부 판사 및 청구검사 이름, 유효기간 등이 기재된 첫 장과 경찰이 작성한 청구(신청) 이유가 적시된 두 번째 장은 제외해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수사 중이거나 개인정보와 관련한 사안은 비공개할 수 있다’ 조항이 명시돼 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날 유족 측에 3차 공문을 보내 부검 협의 시한을 12일로 다시 늦췄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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