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히 부탁합니다. 한국은 에티오피아를 도와선 안 됩니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에티오피아 인종학살 추모집회’ 에서 마이크를 잡은 가브레 아세나피 악라루(28)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반정부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자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던 그는 지난 2012년 10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거듭 눈시울을 붉히던 가브레씨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에티오피아 정부에 한국이 손길을 내밀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티오피아에서는 2005년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가 최근 격화하면서 지난 9일(현지시간) 국가 비상상태가 선포됐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시위에 참가한 이들 중 지난 6월까지 최소 400명 이상이 정부에 의해 살해됐다. 정부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한 에티오피아인 21명은 이날 이러한 자국 현실을 고발하며 한국정부가 에티오피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자행되는 정부의 반 인권적 행태가 최근 더 노골화 됐다고 폭로했다. “친형과 아버지가 고문과 투옥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힌 가브레씨는 “지난 2일 에티오피아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638명이 한꺼번에 정부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정부 비판자 1,000명 이상이 살해됐다는 얘기다.
이들은 특히 최근 한국이 에티오피아와 체결한 각종 경제ㆍ기술 협정들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고도 했다. 멕코넨 아브라함 티라훈(34)씨는 “에티오피아로 흘러 들어가는 한국의 지원이 현지에서 인권 탄압과 시민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며 “정부가 지원 받은 돈으로 무기를 구입한 후 시위에 나선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집회 후 에티오피아 정부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청와대와 야당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타리크 모라(33)씨는 “한국 정부의 손길이 에티오피아의 잔인한 정권을 지탱하고 국민들의 억압을 돕는 데 쓰이지 않도록 정부가 신중한 판단을 통해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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