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여행자의 연령대는 대략 반으로 나뉜다. 배낭여행자는 새파랗게 젊은 편이며, 패키지 여행자는 희끗희끗 황혼 세대가 주를 이룬다. 오토바이를 분신처럼 사용하고 자동차 사이로 오토바이가, 오토바이 사이로 자전거가 비집기 기술을 보이는 도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습관처럼 경적을 울리는 도시, 맥주를 부르는 도시, 각종 호객 행위로 외로울 틈이 없는 도시가 하노이다. 걸을수록 놀랍고도 알쏭달쏭한 문화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그곳에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들에 대한 솔직 담백한 팁.
①지출, 현금 vs 신용카드
베트남에선 현금이 진리다. 신용카드는 어떤 경우에도 3% 수수료가 붙는다. 여기에 자체 카드사별 공제 수수료 약 1.3%(해외카드사 수수료+국내 카드사 수수료)를 덧붙인다고 감안하면 절대 행복할 리 없다. 최악의 경우는 베트남 동(VND)으로 가격표가 붙은 물품을 카드로 사려고 할 때다. 상점에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자체 환율을 적용해 달러로 계산한 뒤 3%의 수수료를 더 붙이는 까닭에 눈 뜨고 코 베인 기분마저 든다.
현금은 일단 달러를 준비한 뒤 VND와 함께 적재적소에 쓴다. VND가 달러보다 유리하다는 정보를 얻고 갔으나 의외로 달러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선 기준 환율이 달러다. 대부분 여행사와 숙소 역시 여행자에게 불리한 환율을 적용한다. 금액이 커질수록 피해는 푼돈에 그치지 않는다. 그 푼돈이 환상의 두 끼를 해결해 줄 터이니.
②음식, 노상 바비큐 vs 논(non) 어머니의 이동식 식당
베트남의 또 다른 유혹, 미각을 마비시키는 음식이다. 두 번의 동공 확대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맛을 접했을 때, 두 번째는 영수증의 가격을 확인하고 원화로 계산하는 순간. 한국의 베트남 음식점 가격을 고려하면 비행기 값까지 빠질 수 있을 거란 요상한 확신에 서게 된다.
우선 논(원뿔 모양 베트남 모자)을 쓴 어머니의 이동형 식당이 도전을 부른다. 현지어로는 누이 반 항 롱(nguoi ban hang rong)이라 불린다. 어깨뼈가 어그러지도록 돌아다니는 여성은 오토바이 피하랴 호객하랴 하루가 전쟁이다. 호기심과 자비심에 자연스럽게 도전했다. 우리의 메뉴는 버미셀리(vermicelli)와 두부튀김 및 스프링 롤. 양이 적어 2차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가 제시한 가격은 10만동(5,000원). 일반 식당에서 두 그릇의 음식과 맥주 한 병을 거뜬히 해결하는 가격인데! 꼭 먹어보고 싶다면 사전에 가격을 협상한 뒤 목으로 음식을 넘길 것. 그래야 그녀를 사기꾼으로 여기지 않을 것 같다.
반면 도 누옹(Do Nuong)이라 하는 노상 바비큐는 한국과 엇비슷하다. 동강 난 굵은 촛대를 연료로 쓴다. 촛불의 희생정신으로 탄생한 바비큐다. 유해 물질 검출로 한국에선 기피하는 쿠킹 호일이 전격 등장한다. 쿠킹 호일 위로 끝없이 기름을 두르면서 고기와 야채를 볶는 '살찔 걱정은 내일 하라' 만찬. 무엇보다 소스가 탁월하다. 기름장인 격인데, 라임을 짜 상큼한 끝 맛을 보장한다. 목욕탕 의자에 앉아 오토바이 경적을 배경 음악 삼아 하노이의 불야성에 잘박잘박 젖어볼 것.
③교통수단, 택시 vs 오토바이 또는 시클로
기본적으로 택시를 이용하지 말자는 주의도 베트남에선 소용없다. 버스는 보이지 않거나 여행자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 마련. 택시의 기본 및 km당 요금은 회사와 차종마다 다이내믹하게 바뀌지만 원화로는 미세한 차이다. 가격이 저렴한 작은 사이즈의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은 5,000~6,000VND(250~300원)대. 배낭여행자의 집결지인 구 시가지에서 하노이 시내를 이동할 시 5,000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다만 신종 사기꾼이 등장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1만VND(500원)씩 오르는 특수 택시다. 대체로 여행자가 많은 관광 포인트 앞에서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 대기 택시보다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거나 믿을만한 택시 회사인 마일린(Malinh) 혹은 비나선(Vinasun)에 탑승한다. 혹 특수 사기 택시에 탑승했다면 그 반값을 내고(그래도 웃돈을 준 셈) 도망가거나 경찰을 부르겠다고 대응할 것. 경찰이란 단어 앞에선 대부분 꽁무니를 뺀다.
오토바이 대여는 자유여행의 상징처럼 여겨지나 하노이 교통 사정은 지옥에 가깝다. 초보 운전자는 경적의 아노미에 빠질 수 밖에 없다. 1일 약 30명이 도로에서 죽는다는 베트남 치사율에 합세할 수 있다(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희소식이 있지만). 패키지여행에서 시내 투어로 애용되는 시클로도 있다. "one hour(1시간)!"을 부르며 호객하는데, 미리 협상한 가격도 화장실 가기 전과 후처럼 변심하기 쉽다.
④현지투어, 호알루-탐콕 투어 vs 사파 투어
대중교통이 불편한 하노이에서는 투어 프로그램이 편하다. 짧은 일정이라면 구원자 같다. 통과의례처럼 이용하는 하롱베이 투어를 제외하고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유혹한다. 남쪽으로 3시간 거리의 닌빈(Ninh Binh) 투어와 북쪽으로 6시간 거리인 사파(sapa) 투어. 둘 다 시내 외곽의 미려한 풍광을 받아들일 기회이나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게으른 강가에서의 신선놀음, 후자는 터프한 산악 트레킹이다. 모두 대중교통으로 하루 만에 주파할 순 있으나 여행 후 하노이행 막차는 떠난 지 오래. 용 쓰지 말고 최소 1박 2일 체류는 감안해야 한다.
닌빈 투어의 속살은 호아 루(Hoa Lu)와 탐콕(Tam coc)이다. 대중교통으로 닌빈 시내에 닿아 이곳까진 또 다른 이동수단과 레슬링을 해야 하니 투어 프로그램이 은혜롭다. 베트남의 최초 수도인 호아 루 방문과 3(Tam의 뜻)개의 동굴을 관통하는 뱃놀이가 콘텐츠. 같은 투어임에도 18달러와 27달러를 낸 여행자가 뒤섞여 있기 쉽다. 점심 뷔페와 자전거 투어 포함 여부만 고려해 하이에나처럼 여행사를 물색할 것.
반면, 사파는 투어 없이 자유여행이 주는 문화 충격이 풍족하다. 일단 가장 저렴한 이동 수단은 160cm 신장에 적합한 2층 침대형 버스다. 슬리핑 버스라 부르고, 나이트메어(악몽)의 버스를 체험한다. 탑승 시 뒤로 가라는 차장의 "비엔(bien, 가버려)! 비엔!" 고함과 함께 불쾌하게 시작한다. 버스가 사파에 닿은 순간, 또 다른 난리 법석이 기다린다. 버스에 몰려든 프리랜서 가이드(소수 민족)의 트레킹 권유다. 보통 점심을 포함해 본인이 사는 마을까지 트레킹하는 코스. 예상보다 신사적이다. 모질게 윽박지르지 않고 친절히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물러난다. 가이드를 대동하든 아니든 지도상 원하는 코스대로 트레킹한 뒤 종착점인 마을에서 시내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면 끝. 소수 민족 후원 차원에서도 여행사보단 이들과의 적절한 직거래를 권한다.
⑤맥주, 250원짜리 생맥주 vs 330ml짜리 병맥주
하노이의 더위는 맥주를 부른다. 이곳의 해피아워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진다는 건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독일이나 벨기에만큼 종류가 다양하진 않으나 애정과 이용 횟수로 따지면 국왕급이다.
하노이의 밤은 구 시가지의 항박(Hang Bac)에서 시작한 타 히엔(Ta Hien) 거리에서 가장 뜨겁다. 오후 7시면 도로는 도보 기능을 전격 상실한다. 인산인해를 비키고 넘어라! 목욕탕 의자가 도로를 점령해 온몸의 근육을 써야 걸을 수 있다. 가격은 하노이 맥주(브랜드) 기준 330ml 병맥주가 2만5,000VND(1,250원)으로 수준이다. 비슷한 수준의 식당에서 450ml 맥주가 1만5,000VND(750원)인 점을 감안하면 분위기에 취하는 값이라고 위안할 수 밖에. 물론 메뉴판에 용량은 생략되어 있다.
맥주 가격의 종결자는 마 마이(MA May) 거리의 노상 생맥주(bia hoi)다. 세상 물가를 잊는 5,000VND(250원)이다. 타 히엔 거리가 현지인과 외국인의 ‘섞어찌개’라면 이곳은 외국인 여행자가 접수했다. 단, 생맥주의 맛이 때에 따라 변한다. 처음 마셨을 땐 이것이 비지떡의 맛인가 싶다가도 다시 마시면 하노이의 진정한 맥주로 손꼽다가 후엔 단맛까지도 나는, 정체불명의 맛이다. 무엇보다 보는 눈이 즐겁다. 4인 탑승의 오토바이 행렬과 여행자를 눈요기하는 하노이 라이프의 최대 명당이니까.
▦직접 경험한 기쁜 하노이 물가(2016년 10월 배낭여행자 기준)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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