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원정팀의 지옥’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골 맛을 본 태극전사는 단 두 명이다. 1977년 11월 아르헨티나 월드컵 최종예선(2-2 무) 때 이영무(63ㆍ현 고양 자이크로 대표이사)와 2009년 2월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1-1 무) 때 박지성(35ㆍ은퇴)이다. 2000년 이후로는 박지성 한 명뿐인 셈이다. 올림픽대표팀으로 범위를 넓히면 한 명 더 있다. 2004년 3월 아테네 올림픽 최종예선(1-0 승)에서 이천수(35ㆍJTBC 해설위원)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국가대표와 올림픽대표를 통틀어 한국이 아자디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이기도 하다. 11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에서 박지성의 뒤를 이을 득점자가 탄생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란의 탄탄한 수비는 허리에서 나온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강한 압박으로 상대에게 공간을 주지 않는 축구를 한다.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페르시아인인 이란은 유럽 혈통이다. 힘이 좋고 점프력이 높아 한국 선수들이 몸싸움에서 늘 고전한다. 또 어지간해서 볼을 뺏기지 않는 끈적끈적한 축구와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상대를 지치게 한다. 이란은 이번 최종예선에서도 카타르(2-0 승)와 우즈베키스탄(1-0 승)을 이기고 중국(0-0 무)과 비겼다. 3경기 무실점으로 짠물 수비를 뽐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실점도 많지만 득점력도 높다. 최종예선 3경기에서 6득점, 4실점이다.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감독 부임 이후 철통 같은 수비로 호평 받았던 대표팀은 최종예선 들어서는 매 경기 수비가 불안하다. 허술한 뒷문을 공격력으로 커버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란 골문을 열어젖힐 한국 공격의 선봉장은 역시 손흥민(24ㆍ토트넘)이다.
소속 팀과 대표팀에서 물 오른 감각을 보이고 있는 그는 이란 현지에서도 단연 화제다. 대표팀은 이란 도착 후 9일 첫 훈련을 소화했는데 30여 명의 현지 팬들은 한국 훈련이 끝난 뒤 모두 손흥민에게 달려들어 사진 촬영을 요구했다. 손흥민은 박지성 이후 침묵 중인 아자디 원정 득점포를 다시 가동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이란 출국 전 인터뷰에서 “이번에 새 역사를 새롭게 써보자는 각오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있다. 어려운 경기가 되겠지만 준비를 잘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손흥민은 카타르전에서 발목을 다쳐 회복 중인 상황이지만 경기 출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1일 중국전 2도움, 지난 6일 카타르전 1골 등으로 컨디션이 살아나고 있는 지동원(25ㆍ아우크스부르크)도 득점 후보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경기는 창(한국)과 방패(이란)의 대결이다. 이란도 좋은 팀이지만 우리가 훨씬 낫다. 섣불리 덤비지 말고 우리 플레이를 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197.5cm의 장신공격수 김신욱(28ㆍ전북)도 호시탐탐 공격포인트를 노린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의 강한 압박을 돌파하기 위해 정교한 롱패스로 한 번에 상대 골문을 공략하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최전방에서 김신욱이 직접 크로스를 해결하거나 그가 떨어뜨려 준 공을 2선 공격수들이 노려 득점하겠다는 포석이다. 체격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이란 수비수에게도 ‘고공폭격기’ 김신욱은 두려운 상대다.
한편 이란은 예상대로 텃세를 부리고 있다.
대표팀이 첫 훈련을 소화한 알아랏 훈련장의 잔디는 곳곳이 패어져 있었다. 골키퍼 권순태(32ㆍ전북)가 “어두워서 공을 막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조명 시설도 좋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의 계속된 요구로 둘째 날 훈련은 그나마 상태가 좋은 쇼하다 샤르 쿼즈 스타디움으로 옮기기로 했지만 이곳은 대표팀 숙소와 차로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다. 또 다른 사고도 발생했다. 테헤란에 도착한 선수들을 데리러 오던 대형버스가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스럽게 선수들이 타기 전이고 속도가 빠르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고 버스는 곧 수리됐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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