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 발언 폭로되자 잇단 지지철회
러닝메이트마저 “용납 못해” 유세 취소
대선을 한달 앞두고 미국 공화당이 사상 초유의 내분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음담패설 발언이 폭로되면서다. 민주당 경쟁자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경합주 의원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마저 발을 빼면서 공화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판세에서 치명타를 맞은 형국이어서 공화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8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전날 음담패설 파문이 발생한 이후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총 42명의 공화당 핵심인사들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취소하거나 대선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2005년 트럼프가 방송 녹화를 하기 전에 저속하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유부녀를 유혹한 경험 등을 쏟아냈다며 대화 내용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즉시 “개인적 농담이었다”고 주워담았으나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특히 트럼프는 올 6월 성폭행 혐의로 피소까지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제인 도우’(Jane Doe)라는 익명의 여성은 자신이 열세 살이던 1994년 당시 트럼프에게 성폭행 당했다며 현장을 목격한 여성들의 증언과 함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 관련된 청문회가 12월에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과거 진행했던 리얼리티쇼 ‘견습생’의 프로듀서였던 빌 프루잇은 트위터에 “시즌 1과 시즌 2의 프로듀서로서 장담하는데 트럼프 테이프에 관한 한 훨씬 나쁜 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그에게 반기를 든 공화당 지도부 인사는 150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 동안 트럼프에 대한 지지여부 표명을 유보해온 라이스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는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 대선 후보에서 사퇴해야 한다. 영광스런 미국 대통령 자리에 다른 후보가 나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매케인 의원도 이날 성명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적 발언, 성폭력에 대한 트럼프의 자랑은 조건부 지지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면서 “(나와 아내는) 트럼프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를 철회하거나 후보 교체를 요구한 공화당 인사는 이외에도 켈리 아요테(뉴 햄프셔)ㆍ롭 포트먼(오하이오) 상원의원, 로버트 벤틀리(앨라배마)ㆍ게리 허버트(유타) 주지사, 제이슨 샤페츠(유타)ㆍ톰 루니(플로리다) 하원의원 등이다. 이들 중 다수는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를 대선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 역시 "그의 발언을 용납하거나 방어할 수 없다"며 위스콘신 합동 유세 계획을 취소했다.
하지만 공화당 인사들의 지지 철회ㆍ사퇴요구가 트럼프 낙마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당사자인 트럼프가 후보에서 사퇴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다짐하고 있는데다가, 펜스 후보와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도 극도의 불쾌감과 실망감을 표시하면서도 지지 철회는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5시 뉴욕 트럼프타워의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계속 선거를 치를 것이냐’는 질문에 “100%”라고 답했다. 또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주류언론과 기득권층이 사퇴를 요구하지만, 절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언 하원의장의 경우도 “구역질이 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자신의 지역구 위스콘신에서 열린 유세를 트럼프 없이 치르면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외치는 등 밑바닥 민심은 트럼프 지지세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음담패설 파문에도 불구, 트럼프가 사퇴할 가능성은 없지만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예측시장이 평가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7일 이후 8%포인트나 급상승, 8일 현재 82%를 기록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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