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스물세 살 백수 아가씨 다마코가 고향집에 내려와 하루 종일 데굴데굴 구르는 영화다. 저러다 뭐라도 하겠지, 하며 러닝타임 78분을 기다렸지만 다마코는 끝끝내 데굴데굴 하기만 했다. 그녀가 만화책을 보고, 아버지가 차려준 밥을 먹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곳은 ‘고타쓰’ 안이다. 고타쓰란, 테이블 상판 아래에 전기히터를 달고 커다란 담요를 덮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든 일본식 난방기구다. 그러니까 도톰한 방석 하나 깔고 앉아 고타쓰를 덮은 담요 안에 다리를 쏙 집어넣고 앉으면 그야말로 따끈따끈, 세상 더 부러울 것이 없어지는 상태에 금세 다다르게 되는 거다.
2년 전 그래서 고타쓰를 샀다. 강아지와 둘이 살던 시절이었다. 강아지는 고타쓰 담요 아래로 쪼르르 기어들어가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귤 바구니와 소설책 한 권 곁에 두고 고타쓰 앞에 앉으면, 어느 새 누워버렸고 또 어느 샌가 나는 잠들었다. 택배 아저씨가 초인종을 눌러도 고타쓰를 빠져나오기 싫었다면 말 다 한 거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그래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도 졸업한 다마코가 고타쓰 안을 벗어나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쩍 추워진 새벽에 눈을 떴다. 벌써 고타쓰를 꺼낼 계절이 온 거다. 나는 또 노트북을 들고 고타쓰 앞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저만치 굴러다니는 리모컨을 발끝으로 겨우겨우 집었다가, 기어코 잠들겠지. 원고 써야 하는데, 원고 써야 하는데, 걱정만 하다가 가을과 겨울이 금세 다 흐르겠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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