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한때 우리나라 서점에서 인기 있었던 번역책의 제목이다. 법학 교수 입장에서는 평소 강의하던 내용과 관련성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재미있게 읽기는 하였지만, 읽으면서 그 책이 대중적으로도 그렇게 인기가 있을 만한 책인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있었다. 막연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의로움 혹은 공정성에 대한 갈망의 정도가 높은 것이 그와 같은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하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는 당연히 나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상의 질서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자신들만 손해를 보고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가져올 수 있는 과잉대응이다. 개인의 입장에서야 각자의 성격이나 운명에 관한 것이므로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지만, 국가나 공동체 입장에서 집단적으로 그와 같은 우려가 지배하고 그에 따른 법제도의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의심과 과잉대응에는 그에 비례한 부작용과 비용이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결국 시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대로 시행 초기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법의 취지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광범위하게 그 법의 적용을 받는 400만 명 이상의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조차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 것인지에 관한 극심한 불확실성이 야기되고 있다. 법을 처음 제안한 분은 세상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으로 ‘더치페이’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기대를 표시하고 있지만, 그 기대와 달리 그 법은 막아야 하는 심각한 부패는 정작 막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들만 지나치게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교나 공공기관이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해오던 업무관련 활동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학생이 교사에게 캔커피를 선물할 수 있는지,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선물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일상적이고 작은 질문에 관해서도 일관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다 안 된다는 것이고, 그 모든 사안들은 무수히 많은 법위반자들이 신고를 받고 수사 및 재판을 받은 후 대법원까지 가서야 해결이 될 형국이다. 판례를 만들고 싶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결국 법위반의 소지가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차단하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법의 취지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규범에 관한 행동강령이라고, 법위반 여부의 고민을 법률가에게 맡기는 건 곤란하고 함께 토론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행동강령 수준으로 머무는 경우에나 그런 것이지 명시적인 형사처벌 조항이 함께 있는 처벌법규의 해석 및 집행은 결국 법률가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법은 어떤 행동이 처벌받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사전에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급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입법의 취지와는 무관한 시대착오적인 내용도 여럿 발견된다. 연구를 통한 지적 가치의 창출을 본업으로 하는 연구자들의 사회적 활동을 공직자의 직위와 관련한 외부강의와 구별하지 않고 규제하는 부분, 심지어 대가를 받지 않는 모든 외부강의를 미리 소속기관의 장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은 학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도 시급하게 다시 검토해야 할 내용들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정치 체제는 윤리적, 도덕적 규범을 법으로 만들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치열하게 발전해 왔다. 다시, 지금 우리 사회의 진정한 정의란 과연 무엇일지 고민할 때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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