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는 정신분석
김서영 등 지음
현실문화 발행ㆍ240쪽ㆍ1만5,000원
이 나라에서는 믿을 건 인적 자원뿐이라며 ‘엄마’ ‘아빠’를 뗀 아이에게 ‘마더’ ‘파더’를 가르친다. 없어서 불행한 줄 알았던 돈은 있어도 불안하고 ‘더 가진 놈’은 미움의 대상이 된다. ‘흙수저’ 인생 여기서 끝나나 했더니 고스란히 자식이 물려받게 생겼다. 뻔한 스토리에 ‘또 그 소리냐’는 핀잔이 나오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으니 무조건 저쪽 편에 손가락질해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이 커져간다.
‘헬조선’이라는 단어조차 이미 낡아 버린 한국사회에도 “정신분석이 필요하다”며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학자 9명이 뭉쳐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을 냈다. 이들은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2014년부터 1년 간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증상을 탐색한다.
저자들도 인정하듯 이 책이 한국사회의 증상이라며 다루는 것들은 “이미 알려진 것이며, 그만큼 진부하다”. 그러나 단지 익숙해서 무감각할 뿐, 외모 강박, 돈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모순적 태도, 늘어나는 반사회적 범죄와 세대 갈등 등 책에서 다루는 11개의 주제는 한결 같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요하는 사회 문제임에 틀림없다.
“사회 현상을 왜 너희가?”라는 의구심에 대응하는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무의식은 언제나 타인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신분석가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분석할 수 있다. 인간을 욕망으로 설명하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으로 “한국사회를 바꾸고 치유하는 실행적 욕망”을 이끌어내기를 희망하는 저자들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자크 라캉)이라는 라캉주의적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파리8대학에서 라캉을 연구한 백상현은 한국사회의 ‘멘토 열풍’을 이야기하며 과연 ‘멘토가 정말 필요한가’를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요즘 ‘멘토’라 ‘불리는’ 사람은 정신분석의 윤리가 말하는 ‘멘토’와 매우 거리가 멀다. 요즘 멘토는 “삶에 대한 효과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스승을 찾는 대중의 요구”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실용적 지식이나 정보를 주로 전달하거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이상적 자아를 모델로 제시해 모방하도록 유도한다. 파편화된 혹은 잃어버린 정체성은 하나로 모으거나 곧 발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는 답은 “사회의 지식과 권위가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해 오히려 존재를 소외시킨다.
진리는 사실 “현재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재앙”, 그리하여 “도래할 질서, 흔히 창조적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질서를 가능하게 만드는 특수한 형태의 지식”에 가깝다. 텅 빈 풍경에 익명의 존재로 인물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예로 들며 그는 ‘멘토’는 어쩌면 ‘공허함’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멘토는 “텅 빈 것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그려 내는 것은 텅 빈 것이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동시에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기이한 감정을 유발”하는 호퍼의 그림과도 같다. 공백은 두렵다. 그럼에도 “비-존재를 견뎌”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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