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법 간단해 보이고 음정 없어
유독 할 일 없는 연주자 착각
타악기 특성 모르는 오해일 뿐
3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현악기들이 작은 고음으로 ‘멀리서 솟아오르는 해’를 묘사하자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현대음악가 조지 벤저민(56)의 초기작 ‘앙상블을 위한 동이 틀 무렵’이다. 윌리엄 터너의 회화 ‘노햄 성, 일출’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대부분의 현대음악이 그러하듯 신경을 긁는듯한 고음과 초저음, 엇박이 어우러진다.
연주 중간 몇 초의 공백이 이어지다 모든 악기가 일시에 소리를 내뿜는 연주가 반복되고, 절정에 달하는 순간 타악기 단원 김문홍씨가 북북 소리를 내며 신문지를 찢는다. 이 곡 연주에 쓰인 타악기는 스네어드럼, 슬랩스틱, 마라카스, 귀로 등 모두 15개. “7~10㎝ 높이에서 유리 접시에 탁구공을 떨어뜨리는” 주법을 선보이는 이번 연주를 위해 집에서 쓰던 접시도 공수해왔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타악기 주자들은 유독 ‘할일 없는’ 연주자로 비치곤 한다. 다른 단원들에 비해 연주 시간이 적은데다 음정 없는 악기를 많이 다뤄 주법도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타악기 특성을 모르기 때문에 빚는 오해”라고 말한다. 서울시향 타악기 수석인 에드워드 최는 “타악기 주자는 오래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 연주 중심을 잡기 때문에 축구경기의 골기퍼에 비유된다”고 말했다.
한 번 연주에 악기 수십 개 사용
잔향까지 고려해 박자 맞춰야
음색 부각 현대음악에선 주연급
고전주의 시대 오케스트라 곡에는 팀파니, 심벌즈가 종종 등장한다. 김문홍 단원은 “서울시향에만 심벌즈가 70~80대 있다. 각각의 작품에 맞는 음색의 타악기를 고르는 일부터 업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동이 틀 무렵’에서 연주한 스네어드럼도 시향이 구비한 50대 중 몇 번의 리허설을 거쳐 작품에 맞는 걸 골랐다. 팀파니는 ‘음정 있는’ 악기(북 면이 팽팽하면 음이 높아지고 느슨하면 낮아진다)라서 연주 중 수시로 필요한 음높이를 찾아 조율하고 북채도 바꿔야 한다. 낭만주의, 20세기로 들어오면서 팀파니 음높이 조정이 한층 쉬워지면서 조바꿈이 무수히 들어간 교향곡들이 쏟아졌다.
타악기는 100인조 이상 대편성 교향곡이 등장하며 극적 효과를 위해 더욱 다양하게 고안됐다. 올해 서울시향에 입단한 스콧 버다인은 “한 번에 수십 개 타악기가 등장하는 연주에서 효과적으로 악기 동선을 짜는 것도 연주자의 몫”이라며 “어렵지만 이 과정이 가장 매력 있다”고 말했다. 수십 개 타악기를 몇 명이 연주할지, 누가 어떤 악기를 연주할지는 수석이 정한다.
대편성 교향곡의 박자 맞추기는 까다롭다. 연주 공간이 넓어 악기 위치 별로 잔향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최는 “타악기는 무대 뒤편에 있기 때문에 다른 악기보다 먼저 소리를 내야 한다”며 “연주홀 규모, 잔향에 따라 미리 엇박을 계산해서 쳐야 멀리 떨어진 바이올린, 협연 독주자 연주와 박자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멜로디나 화성보다 음향, 음색이 부각되는 현대음악에서 타악기는 주연급이다. 두드려 소리 나는 모든 물건은 전부 타악기가 될 수 있어 때로 연주자들이 악기 제작도 한다. 서울시향은 2006년 현대음악 기획시리즈 ‘아르스노바’를 시작하면서 뱀부 차임, 카우벨, 말러 교향곡 6번에서 단두대 소리를 상징하는 일명 ‘떡메’ 등을 자체 제작했다.
타악 연주를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은 뭘까. 스콧은 “악기 음색을 집중해서 들어보라”며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타악기 매력을 제일 잘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은숙 작곡가가 공연기획자문역을 맡아 내년 정기연주회에서는 타악기 연주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귀띔했다.
오는 가을 굵직한 현대음악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기획시리즈 ‘2016 아르스노바 4’가 7일 LG아트센터에서, 올 초 타계한 거장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프랑스 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첫 내한연주회가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영화 ‘와호장룡’ OST 작곡자로 알려진 중국 음악가 탄둔이 지휘하는 ‘탄둔 무협영화 3부작’ 연주회도 11월 4, 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에드워드 최는 “이 공연을 위해 청계천에서 ‘물 양동이’ 악기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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