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에 대한 상호의심이 갈등 키워
‘병사’라도 인과관계의 단절 어려워
실체적 진실 찾으려는 부검은 가능
그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국내 최고라는 의료진의 노력과 가족들의 간망(懇望)도 소용 없이, 지난달 25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고(故) 백남기씨의 사망 소식은 안타까움과 함께 열 달 넘게 제자리걸음을 해온 수사에 속도가 붙으리란 예상을 불렀다. 그런데 아니었다. 부검(사체 압수수색) 영장과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논란이 나라를 달군 가운데 신속 수사 전망은 더욱 흐려졌다. 상호불신이 워낙 커서 유족이나 경찰 어느 쪽도 쉬이 물러설 태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양쪽 다 달은 보려고도 하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며 곧네, 굽었네 하고 엉뚱한 다툼에 매달린 형국이다. 서울대 의대생들을 비롯한 전국 의대생들의 ‘봉기’를 부른 사망진단서 논란부터 그렇다. 의대생들의 주장대로 ‘직접사인’을 ‘심폐정지’, ‘사망의 종류’를 ‘병사(病死)’라고 기재한 것은 부적합하다.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심폐정지는 죽음의 의학적 정의 내지는 법률적 정의여서 직접사인일 수 없다. 문제의 사망진단서가 ‘심폐정지의 원인’으로 기재한 ‘급성신부전’이 적혀 마땅하다. 죽음의 종류가 이 경우에는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外因死)’라는 지적도 합당하다.
그러나 ‘심폐정지’를 직접사인으로 적는 실수나 오류는 의료현장에서 아직 근절되지 않았고, 서울대병원 특위의 결론처럼 ‘병사’나 ‘외인사’의 선택은 주치의의 판단에 맡기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두 군데의 오류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사망진단서는 ‘급성 경막하 출혈→ 급성 신부전→ 심폐정지’의 과정을 정확히 기재하고 있다. 약간의 의료 상식만으로도 누구나 고인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졌고, 장기 연명치료의 결과로 급성 신부전에 이르러 죽음을 맞았음을 알 수 있다.
일부 논자들은 ‘병사’라는 기재가 부검영장 청구와 발부의 근거(빌미)라는 시각에서 서울대병원의 실수(오류)에 모종의 의도가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라는 최초의 원인 행위와 고인의 죽음을 잇는 인과관계가 끊어져 경찰이 과잉진압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리란 의심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의심은 기우에 가깝다. 우선은 법원이 ‘병사’라는 한 마디에 사로잡혀 일반인도 놓치지 않을, 죽음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간과할 리 없다. 또 ‘병사’라고 해봐야 어차피 뇌출혈에 의한 혼수상태의 연장일 뿐, 완전히 독립적 요인의 개입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인과관계의 단절은 불가능하다는 게 형법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비슷한 사건의 판례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최근 공개했듯, 2014년 절도범의 폭행으로 의식을 잃고 9개월 동안 입원했던 피해자가 폐렴으로 숨진 사건에서 법원은 “폐렴이 직접사인일지라도 그것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고 보았다. 판례의 주축인 ‘상당인과관계설’이 대단히 폭넓게 인과관계를 인정해 왔다는 점에서도 ‘병사’에 의한 인과관계의 단절이나 초월은 함부로 상정하기 어렵다. 현재의 사망진단서 논란이 헛방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사망진단서 논란이 끝나도 부검 여부를 둘러싼 경찰과 유족의 갈등은 쉬이 풀리지않을 것이란 점이다. 위의 이치를 모를 리 없는 경찰이 부검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과관계 단절’과 다른 것일 수 있다. 고인의 경막하 출혈은 두개골뿐만 아니라 안와(眼窩)ㆍ광대뼈 등 다발성 골절에서 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두개골 골절은 땅에 머리를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안와나 광대뼈는 대개 큰 압력이 집중적으로 가해져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같은 ‘외인성’이라도 직사 물대포 외의 다른 요인이 있다면 인과관계가 복잡해진다.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부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도 적잖이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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