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만 전기 사용량에 따라 단가가 대폭 뛰는 누진제는 유효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송이 제기된 지 2년 2개월 만으로, 시민 8,200여명이 참가한 나머지 소송 9건에도 이 판결이 잣대가 될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8단독 정우석 판사는 6일 가구주 정모씨 등 17명이 “주택용 누진제로 챙긴 부당한 전기료를 돌려달라”며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 판사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주택용 전기요금약관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6조)에 따른 무효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무효’라는 법 조항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판사는 “전기요금 산정에 관한 고시를 보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필요하면 누진요금, 차등요금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면서 “(원고가 문제 삼은) 2012~2013년 전기공급 약관상 주택용 전기료 누진체계의 근거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지식경제부 고시에 ‘전기요금은 공급에 소요된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선에서 정하는 원칙을 두되, 사업자의 경영 효율성을 위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다’거나 ‘요금체계는 사회ㆍ산업정책적 요인을 고려해 전기사용자간 부담의 형평성이 유지되고 자원의 배분이 되도록 정해져야 한다’고 명시된 점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주택용 전기료의 누진구간과 누진율에 관한 적정 범위나 한도가 법령에 명시돼 있지 않아 한전이 과도한 전기료를 받았다는 주장이 맞는지 판단할 수도 없다고 정 판사는 판결문에 썼다.
소송을 이끈 곽상언 법무법인 인강 대표변호사는 선고 뒤 “근거 규정이 있다는 것과 위법하다는 것은 다른데 법원이 쟁점을 회피했다”며 항소 뜻을 밝혔다. 한전은 “법원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당정 전기요금 태스크포스(TF)에서 진행 중인 누진제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전의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6단계로 구분돼 전력사용량에 따라 단가가 최고 11.7배 차이가 난다.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산업용 전기요금에 비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올 여름 폭염으로 인해 개선의 목소리가 컸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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