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흥 신임 통합대한체육회장/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지난 5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장의 한 체육계 원로는 투표 결과가 나오고 한참이 흐른 뒤에도 "와, 이기흥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기흥(61) 신임 회장은 당초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다수가 포진한 친정부 성향의 후보자들을 따돌렸다.
6일 4년간의 임기를 시작한 이 회장은 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효표 892표 중 몇 294표를 얻어 213표로 2위에 오른 장호성(61) 단국대 총장을 81표 차로 누르고 새 통합 대한체육회장에 올랐다.
33%의 지지를 이끌어낸 이 회장은 절대 강자가 없이 분산된 표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분석이다. 체육인 출신은 아니지만 2000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을 맡아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카누연맹 회장을 지냈고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는 체육회 부회장으로도 일했다. 그 동안 런던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는 등 오랫동안 체육계에 몸담으며 쌓은 친분과 인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앞에는 풀어야 할 만만치 않은 숙제가 2가지나 놓여있다. 수영연맹 회장 당시 형성된 부정적인 이미지와 정부와의 관계 개선이다.
이 회장은 연맹 임원들의 비리가 밝혀지고 파문이 커지면서 수영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기간 여러 임원들이 부패를 저질렀다는 점 때문에 당선 뒤 아직 그를 바라보는 여론이 썩 호의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회장으로선 투명한 리더십으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이를 적극 추진한 문체부와 대립각을 세운 일도 걸림돌이다. 당시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 측의 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정부의 의지 아래 생활체육 쪽에 힘이 쏠리는 분위기에서 이 회장은 엘리트 체육 입장에 서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냈다. 통합을 빠르게 매듭짓기 위해 애쓴 문체부와 마찰이 불가피했다.
이 회장은 통합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방법과 절차에서 정부와 이견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선 전에는 "통합을 자율적ㆍ자주적으로 해야 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고 했고 당선 후에는 "이견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최우선 과제로 꼽은 재정 자립을 놓고 스포츠토토 기금 재분배를 꺼내 주무 부처와 갈등을 예고하는 등 향후 정부 측과 얼마나 호흡을 맞춰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체육인들의 선택은 이기흥이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해봐야 한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체육인들 입장에서는 구관이 명관이고 남다른 추진력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던 소견 연설에서 제시한 파격적인 일자리 공약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본 이 회장은 연단에서 시종일관 차분했다. 일부 흥분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후보들과는 달랐다. 이 회장은 먼저 자신의 경력과 실무 경험을 차분하게 내세웠다. 그는 "카누와 수영연맹 회장, 체육회 수석 부회장 등을 지내며 4번의 올림픽과 2번의 아시안게임 다녀왔다"며 "체육 현장에서 함께 웃고 울며 동고동락해온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불합리한 모든 규정과 규약을 재정비하고 재정 자립을 통해 체육회가 재탄생해야 한다"면서 "지방 경기연맹이 사무실조차 없는 것이 말이 되나. 후진적인 제도들은 반드시 바꿔나갈 것"이라는 호소력 발언으로 청중을 사로잡기도 했다.
결정적인 건 일자리 공약이었다. 이 회장은 "일자리가 체육인들에게 최고의 복지"라고 단언하면서 "체육인들에게 5,000개의 일자리 만들어내 제공할 것이다. 산재된 체육시설을 관리하고 노인을 지도하며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연계해서 발전하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자리 창출은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재정 자립의 토대 위에 완성된다. 이를 위해 그는 "물리적 결합을 뛰어넘는 체육회의 화학적 결합을 조화롭게 이끌어내고 학교 체육과 동아리 체육을 지원하겠다. 국민 모두가 언제든지 운동을 접할 수 있는 시설 확충과 인프라 구축비용을 제도와 설립 취지에 맞도록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해서 해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사활을 걸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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