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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기파괴적 예언‘이 오히려 두렵다

입력
2016.10.0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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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한국 위정자들이 잇달아 분노로 가득 찬 ‘말 폭탄’을 날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통제 불능의 정신상태”로 비꼰 데 이어 북한 주민들에겐 대놓고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했다. 여기에 윤병세 외교장관은 북한을 거의 ‘상습 범법자’로 규정하면서 유엔에서 제명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보수 일각에서는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선제공격론 등 강경책들을 여과 없이 마구 쏟아낸다. 내일 당장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도, 아니 한판 붙어도 좋다는 분위기다.

사실 북핵 공포는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 이상으로 핵 버튼을 움켜쥔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증된다. 정말 그는 상종해서는 안 되는 정신병자인가. 주민의 민생은 내팽개친 채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봐서는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순간 우리는 통일은커녕 핵 위협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수단들을 거의 모두 접어야 한다. ‘정신병자’ 김정은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거나 제거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 죽고 나만 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모두 죽는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이런 결단을 내리긴 어렵다.

한국 위정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오히려 북한에 핵 능력 강화는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면서 어떻게든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줄곧 남한과 미국으로부터 체제 위협을 받아왔다. 이를 나름대로 돌파하기 위해 북한은 엄청난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핵 보유의 명분과 실질을 줄기차게 추구해왔다. 이번 핵실험 이후 우리 위정자들이 연출한 과도한 ‘엄살’과는 달리 주식시장이나 시민사회는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핵 소동이 ‘깜짝쇼’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충분한 예고와 우리의 예측범위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북핵 공포라는 현실은 오히려 남한 보수 정권의 근거 없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결과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처음부터 북한을 일종의 ‘괴물’로 간주하며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 것 같다. ‘통일 대박’이라는 장밋빛 풍선을 띄웠을 때나 김정은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관되게 북한은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대화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 설정된 망상은 어느새 자기파괴적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이 예언한 대로 북한이 정말 ‘정신병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런 사태는 북한이 만들었지만, 박근혜 정권도 이를 기다리고 조장한 ‘공범’이다.

자기파괴적 예언(self-destroying prophecy)의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은 북한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숙명론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박근혜 정권에 이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압박을 가중하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거짓말쟁이’ 북한과 협상을 해봐야 시간 낭비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검증된 것처럼 아무리 제재를 가하더라도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북한은 박근혜 정권의 근거 없는 예언대로 점점 핵 능력을 키워가며 악마화할 것이다.

일련의 핵 위협을 김정은의 소영웅주의나 무모한 모험주의 탓으로 돌리면 화풀이는 될 것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문제의 실체를 볼 수 없을뿐더러 자기파괴적 예언의 역설에 빠지게 된다. 핵 공포는 북한과 함께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다는 자각과 반성이 필요하다. 통일 대박이 아니라 긴장완화야말로 대박이고, 합리적 선택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 점을 이해하고 발상을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현실이 오히려 답답하고 위험해 보인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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