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복도를 종종종 걸어가는 나를 수학선생이 붙잡아 세웠다. “너! 니네 부모님 이혼하신 거 왜 말 안 했어!”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이혼이라니. 그런 적 없다는 내 말에 수학선생은 들고 있던 회초리를 들어 내 종아리를 아무렇게나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넌 니네 부모님이 이혼한 것도 아닌데,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수학성적이 그 모양이라는 거냐? 내가 네 시험지를 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요 녀석아, 니네 부모님이 이혼한 게 틀림없다 생각했다, 요 녀석아!”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수학선생은 운동장 두 바퀴를 명령했다. 나는 땡볕 아래 운동장을 혼자 뛰었다.
두더지의 언어를 배운다 해도 수학보단 빨리 깨칠 것 같았다. 그날 운동장을 돌며 나는,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꼭 홍성대라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생각했다. 누구나 다 갖고 있던 그 책, ‘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 말이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 책 따위 만들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 두꺼운 표지만 보아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수학의 정석’이 발간된지 벌써 50년이 되었단다. 그동안 4,600만권을 팔아치웠다지. 나는 내 책을 몇 권이나 팔았나 세어보다 그냥 쿡쿡 웃는다. 예전에 소설가 한창훈은 어느 책의 작가 후기에 “이 책이 잘 팔려 딸에게 피아노를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는데, 나는 올 겨울에 새 책이 나오면 내 딸에게 음, 무엇을 사줄까. 오늘 밤부터 고민을 좀 해보아야지. 너무 비싼 건 말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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