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70년을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성매매 할머니도 생소하고 종로 거리, 탑골공원, 신림동 여관 등 이런 도심이 있는 줄도 몰랐다. 배우니까 그저 주어진 65세 소영에 빠져 연기를 했을 뿐이다. 소영은 폐지나 빈병을 줍고 사느니 몸을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지만, 함부로 남의 인생을 평가할 순 없다. 그냥 소영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그의 인생을 함께 아파했다. 그게 윤여정이 '죽여주는 여자'를 대한 방식이다. 황지영기자 <a href="mailto:hyj@sporbiz.co.kr">hyj@sporbiz.co.kr</a>
-45년만의 해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이재용 감독이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 이야기를 꺼내기에 멀어서 못간다고 했다. 또 그때 미드 '센스8'을 찍고 있어서 스케줄도 바빴다. 그랬더니 이 감독이 '그게 아니라 여우주연상 수상하셨습니다' 그러더라. 내가 가지도 않았는데 상을 줬다니 그것 참 공정한 시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 받으신 소감은.
"상이라는 건 운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했어도 소재나 그 시대상과 맞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배우가 연기를 잘했지만 지난해 수상작과 비슷하다면 올해는 못 받을 수 있다. 시류에 맞게 상이 돌아간다는 말이다. 예전에 청룡영화상 받고 내가 연기를 잘했나보다 한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그렇다고 해서 상 받기 싫은 건 아니다."
-영화가 굉장히 자극적인데 어떻게 하시게 됐는지.
"원래 이 감독이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그걸 하려다가 내가 다른 촬영에 또 들어가면서 미뤄졌다. 그 사이 이 감독이 '죽여주는 여자' 시나리오를 써놨더라. 자극적인 소재지만 이 감독이 하면 따뜻한 구석이 있겠거니 믿고 들어갔다."
-따뜻함을 느낀 장면이 있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사는데 서로 아무 이야기안하고 다 받아들여주는 게 좋다. 시시콜콜 다 말할 필요 없이 전부 수긍해주는 이웃들이 좋더라. 그냥 애 봐달라고 하면 봐주는 그런 우정이라서 좋더라. 또 죽은 노인에게 받은 돈을 시주하고 딱 10만원만 빼서 쓴다. 그 돈도 혼자 쓰면 안 된다며 이웃들을 부르는데 참 양심 있는 여자구나 싶었다."
-극중 인물 중에 진짜 트랜스젠더가 있었다고.
"안아주라는 친구인데 무대인사를 나보다 더 잘 한다. 하하. 어쩜 그렇게 말을 똑부러지게 하는지 놀랐다. 트랜스젠더라는 걸 떠나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시선을 우리가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런 소수자들을 우리는 범죄자 보듯 한다. 그들의 속사정도 모르면서 범죄자 취급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미국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소수자들의 심정을 잘 안다. 그땐 한국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때 미국인들이 "차이니즈~ 재패니즈~"라며 눈을 삐쭉거리는 노래를 부르며 놀렸다."
-서비스 장면은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세 테이크를 갔다. 한 번 더 하자고 할 것 같아서 내가 발작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소영이 서비스하기 전에 촛불을 항상 켜는데 나는 나름대로 생면부지 남자를 앞에 두고 나름대로 워밍업 하는 시간을 버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실제 그런 할머니를 만나보셨는지.
"먼발치서 성매매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발이 퉁퉁 부었더라. 내 나이가 되면 안다. 오래 서 있으면 피가 다리에 다 쏠린다. 공치는 날이 허다한데 그러다 한 명이라도 걸리면 영광인 거다. 그 분들과는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 노인문제 연구하는 교수를 통해 전해들었다."
-도심 촬영이라서 편했을 것 같다.
"아이고 이런 도심은 싫다. 영화 '계춘할망' 찍고 서울올라와서 이 작품을 했는데 제주도가 낫더라. 나는 이태원이 트렌디한 공간이라는 말만 들었지 그렇게 후미진 곳이 잇을 줄은 몰랐다. 칠십 평생 처음 가본 공간들이다."
-조력살인이라는 소재는 어떻게 이해하셨나.
"유시민 작가가 우리 영화에는 노인 죽음의 전형적인 세가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첫째, 중풍으로 닥친 독립생활의 붕괴로 인한 자존감 파괴. 둘째, 치매로 인한 자아상실에 대한 공포. 셋째, 사랑하는 상대를 잃은 절대 고독. 이게 빈곤과 합치면서 노인들을 자살로 내몬다고 한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나도 안락사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다."
-안락사를 찾아보신 이유는.
"스위스에서 그런 걸 한다더라. 친구랑 같이 죽음을 준비해보려고 했다. 어디서 봤는데 인간이 온전한 정신과 몸으로 살 수 있는 나이가 85세라더라. 그 이후 내리막길이라고 하더라. 내가 죽을 때까지 윤여정으로 살아 있으면 좋은데 나이가 들면서 판단력도 흐려질 것 아니냐. 그래서 안락사를 알아봤다. 간단하지가 않더라."
-보통 죽음은 금기시 되는 대화 소재 아닌가.
"자연의 질서인 죽음을 왜 금기시 하나. 꽃이 자라 지고 떨어지듯 사람도 죽는다. 나도 친구랑 85살에 죽기로 결심하고 안락사를 찾아봤다. 내 시체를 거둬갈 사람이 필요한데 아들한테 시킬 수 없는 노릇이고 참. 지금도 그래서 연구 중에 있다. 중장기 적으로 연구만 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여전히 윤여정은 패션의 아이콘이자 끊임없이 변신하는 배우다.
"패션의 아이콘은 무슨, 이 영화에선 스타일리스트가 주는 대로 입었다. 나는 약간 촌스럽다고 느꼈는데 소영이 가장 화려했을 시절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을 준비를 한다고 집에 박혀서 언제 죽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50년 전 데뷔작 '하녀'와 비교하면 어떤 게 더 파격적일까.
"글쎄 비교를 못 하겠다. 그때는 그게 최악인 줄 알았다. 영화배우는 정말 무슨 사단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할 게 못 되는 직업이구나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50년이 지나도록 점점 이런 작품을 하고 있다(웃음)."
사진=CGV아트하우스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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