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보수 PiS “가톨릭 따르겠다”
강간 등 기존 예외까지 인정 않자
2만여명 거리 곳곳서 항의 파업
폴란드 여성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낙태 전면 금지 법안’에 항의, 검은 옷을 입고 파업에 나섰다.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 지난해 10월 집권한 집권 우파 정당이 기존의 예외를 아예 봉쇄하면서 항의 시위는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도 번지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여성 중심의 시위대 2만여 명은 3일(현지시간) 직장 및 집안일을 거부한 채 바르샤바 의회와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 당사 앞에 모여 ‘낙태 자기결정권’을 주장했다. 이들은 법안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시위’ ‘검은 월요일’이라고 명명했다. 또 전국 공연장과 미술관, 식당, 카페도 문을 닫았고 바르샤바 시 대학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이 취소됐다. 시위대는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라며 “여성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시위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은 11만 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독일과 벨기에, 북아일랜드 등 인근 국가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 이와 관련 유럽의회는 오는 5일 폴란드 여성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폴란드 낙태 논란은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우파 성향의 PiS가 “가톨릭 교리에 따르겠다”며 낙태 전면 불허 법안을 추진하면서 비롯됐다. ▦어떤 경우라도 낙태를 금지하고 ▦시험관 인공수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하며 ▦성관계 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을 금지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또 무허가 낙태수술을 한 경우 여성 본인은 물론 집도의까지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산모 생명이 위험할 경우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법안은 현재 관련 위원회가 검토 중인 단계다.
PiS의 법안 강행 배경에는 총선에서 교회 지지를 등에 업고 승리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점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 90%가 가톨릭인 데다 매주 교회에 가는 독실한 신자도 40%에 달해 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PiS 당 대표도 당초 낙태 금지에 반대했지만 지난 4월 “가톨릭 신자로서 교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에 대해 ‘검은 시위대’는 “폴란드는 이미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낙태법을 적용하고 있다”며 “더 강화된 전면금지 법안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1993년에 제정된 현행 낙태법은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했을 경우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태아가 심각한 기형일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임신중절 수술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낙태법 강화를 지지하는 여론은 11%였고,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3%, ‘현행법 지지’는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지 매체 폴스카 여론조사에서는 74%가 ‘현행법 유지’를 원했다. 현재 유럽에서 낙태를 완전히 금지하는 나라는 몰타와 바티칸뿐이다.
폴란드 내 합법적인 낙태수술은 연간 2,000건 정도며 불법 수술 건수는 공식 통계가 없다. 그러나 여성 단체들은 “폴란드 여성들이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바키아 등 해외에서 매년 10만 건의 낙태 수술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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