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수원 팬’ 김상호 “K리그는 1년짜리 장편영화”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씬 스틸러’(주연급 조연)로 꼽히는 배우 김상호(46). 그는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수원 삼성의 ‘골수 팬’이다. 가끔 축구장에 와서 시축을 하고 하프타임 때 슬며시 돌아가는 ‘무늬만 팬’이 아니다. 1998년부터 수원을 응원했고 구단의 흥망성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산 증인이다. 지난 달 29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그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김상호를 만났다. 1시간 30분 남짓 인터뷰를 한 뒤 알게 됐다. 그는 단지 ‘수원 팬’이 아니라 한국 프로축구를 정말 사랑하고 걱정하는 ‘K리그 팬’이었다.
-언제부터 수원을 응원했나요.
“1998년이요. 한참 연극 포스터 붙이러 다닐 때였죠. 2002년 한ㆍ일월드컵을 앞두고 프로축구 부흥을 위해 1인 1팀 갖기 캠페인이 있었어요. 통장을 개설하면 프로축구 티켓 두 장을 줬죠. 하루는 스포츠 신문 기사를 보는데 수원을 제외한 모든 K리그 팀이 일본 J리그를 벤치마킹하러 간다는 기사가 실렸어요. J리그가 우리보다 10년 늦게 출범(한국 1983년, 일본 1992년)했는데 ‘형’이 얼마나 못 났으면 열 살 어린 ‘동생’한테 가서 배웁니까. 수원의 자존심이 보기 좋았습니다. 통장을 만들고 아내랑 처음 수원 경기를 보러 갔는데. 새파란 옷을 입은 그랑블루(수원 서포터)의 응원에 입이 딱 벌어졌죠. 정말 대단했어요. 경기력도 좋았고요. 바로 다음 해부터 연간회원권을 샀습니다.”
그는 지난 7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 수원FC의 ‘수원 더비’ 때 시축자로 초청받았다.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자랑스레 입고 인터뷰에 응했다. 또 한 장의 손 때 묻은 유니폼을 들고 왔는데 ‘14번’이 새겨진 1997년의 수원 유니폼이었다. 등번호의 주인공은 현재 수원 사령탑인 서정원(46) 감독. 사진 기자가 “저 때 수원 참 축구 잘 했죠”라고 하자 그는 “그럼요. 우리(수원)도 지금 전북 현대(2014~15년 우승. 올 시즌 무패 1위)같은 시절이 있었어요”라며 회상에 젖어 들었다. 1995년 창단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정상 클럽으로 군림하던 명문 수원은 올 시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재 12팀 중 10위로 하위그룹(7~12위)으로 떨어졌고 강등 다툼을 벌이는 처지로 전락했다. 2일 정규리그 33라운드에서도 종료직전 결승골을 허용해 수원FC에 4-5로 패하면서 성난 팬들이 선수단 이동 통로를 막고 약 1시간 동안 ‘단장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원이 올해 부진하죠.
“작년까진 왕좌를 논했는데 이젠 생존(강등)을 말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올 시즌을 쭉 보면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경기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지더라도 최선은 다해야 하는데….”
-올 시즌 그런 모습이 안 보였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렇다기보다 후반에 계속 실점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저런 팀이 아닌데 말이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는데 부자가 마지막 자존심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일부 수원 팬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강등되라’고 악담도 합니다.
“그건 ‘절대 강등되지 마세요’ 이 말입니다. 하하. 우리 같은 지지자들은 단순합니다. 순진하고 욕심 없습니다. 원하는 건 승리 아니면 좋은 게임이에요. 축구만 재미있게 해 달라 이거죠.”
-강등도 장담할 수 없는 순위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강등이라뇨.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전북 현대가 강등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상호와 인터뷰한 날은 프로축구연맹이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사건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열기 하루 전이었다. 전북에 챌린지(2부 리그) 강등과 같은 중징계가 내려져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상벌위는 승점 9점 삭감, 벌금 1억 원의 솜방망이 징계를 줬다.
-전북이 어느 정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까.
“강등이요.”
-역시 수원 팬의 입장이군요.
“(단호하게) 아뇨. 수원 팬이 아니라 K리그 팬의 입장입니다.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은 달게 받아야죠. 제대로 징계가 안 내려지면 앞으로 심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에 대한 신뢰가 프로스포츠의 생명 아닌가요?”
-이번 사건과 별개로 전북이 리딩 구단으로 거듭난 건 사실입니다.
“부럽죠. 부러워요. 하지만 우리도 예전에 전북만큼 다 해봤습니다. 리그도 ‘씹어’ 먹어 봤고(많이 우승해봤다는 의미) 아시아도 제패해봤고요. 우리 팀이 요즘 투자가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지금 당장 전북만큼 많은 투자를 원하진 않습니다. 수원의 색깔에 맞는 개성 있는 팀으로 거듭났으면 해요.”
-지금이 그런 과정이라고 보십니까.
“우등생이라고 늘 공부 잘 합니까. 우등상을 받기도 하지만 탈선도 하고 결석도 하죠. 다시 일어설 거라 믿고 있습니다.”
-프로축구 인기 회복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언론과 방송이 문제가 많습니다. 수원이 몇 년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라와 레즈(일본)랑 붙었을 때에요. 얼마나 대단한 라이벌전입니까.(수원과 우라와는 한ㆍ일 양국을 대표하는 인기 구단. 팀 상징색도 수원은 파랑, 우라와는 빨강으로 대비) 경기가 너무 보고 싶어 죽겠는데 한 군데서도 중계를 안 해요. 프로야구는 겹치기 중계하면서 말에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래 놓고는 월드컵 때 ‘축구는 우리 방송’이네 뭐네 하며 떠들잖아요.”
-방송사들도 광고 수입 등 나름의 이유는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중계를 못 하는 합법적인 이유가 100가지는 될 겁니다. 반대로 해야 할 이유도 100가지는 될 겁니다. 문제는 의지입니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죠. 올 시즌 보세요. 클래식 뿐 아니라 챌린지도 너무 재미있어요. 부천FC(현재 4위)가 클래식으로 올라와 서귀포(제주 유나이티드를 뜻함)와 경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서울 이랜드와 상암동(FC서울을 뜻함)의 대결, FC안양와 수원 삼성의 경기 모두 대단한 라이벌전 아닙니까. 이런 드라마가 어디 있습니까. K리그는 1년짜리 거대한 장편 영화에요. 이런 훌륭한 소재에 걸 맞는 시나리오를 써서 그걸 잘 노출시켜야죠.”
김상호는 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를 팀 명 대신 상암동, 서귀포라 각각 불렀다. 연고 이전의 역사 때문이다. FC서울은 2004년 안양에서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는 2006년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를 옮겼는데 K리그 일부 팬들은 이를 강력하게 비난한다. 이들은 FC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 대신 해당 연고지에서 팀을 새로 창단한 FC안양과 부천FC의 정통성을 더 인정한다.
-FC서울, 제주 유나이티드란 명칭을 안 쓰시네요.
“네. 요즘에는 아들, 딸과 함께 축구를 보는데요. 제가 팀 명을 안 쓰니 아이들이 궁금해해요. 그럴 때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 팀들도 (연고를 옮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아빠는 애정이 안 간단다. 그리고 그 팀에 우리 팀이 지면 너무 속상해. 너희들은 팀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지만 아빠는 안 부를게’ 라고요.
-수원 선수 중에서는 누구를 좋아하시나요.
“예전에는 김대의(폭주기관차로 불렸던 공격수. 현 스카우터)를 좋아했죠. 지금 선수 중에서는 곽희주(수원 한 팀에서만 뛴 레전드)와 홍철(국가대표 수비수)이요.”
-투지 넘치는 선수들을 좋아하시네요.
“예 맞아요. 축구 선수에도 여러 유형이 있죠. 타고난 천재형 선수도 있고요. 하지만 팬들에게 진짜 감동을 주는 선수는 ‘죽을 둥 살 둥’ 뛰는 선수입니다.”
-영화배우도 타고난 배우와 노력하는 배우로 나뉘나요.
“뭐랄까. 잔인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배우는 타고나야 한다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타고난 배우는 그 한계 위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렇다면 김상호씨 본인은요?
“(주저 없이) 타고났죠. (웃음) 타고 났는데 ‘죽을 둥 살 둥’ 합니다. (또 한바탕 크게 웃으며) 욕을 바가지로 먹겠는데요? 사실 모든 배우들은 다 피땀 흘려 노력합니다. 여러 분들이 영화에서 보는 알만한 배우들은 다 타고 났고 또 무지하게 열심히 합니다. 온통 영화 생각 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영화 이전에 연극을 오래 하셨죠.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간단합니다. 고교 시절부터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뭘 하든 이름을 남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1997년 즈음 생활고에 잠시 연극을 그만둔 적도 있다고요.
“연극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월세를 못 내 보증금이 계속 깎였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다른 일을 이만큼 했으면 전세라도 하나 있을 텐데’. 그 길로 원주로 내려가서 새벽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막노동, 우유배달 했어요. 돈을 조금 모아서 포장마차도 했죠. 신기했어요. 내가 움직이는 대로 돈이 모이는 거에요. 연극은 똑같이 열심히 해도 늘 제자리걸음인데…. 하지만 연극이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하루는 ‘나중에 내 아이들이 태어나서 어떤 꿈을 위해 노력하다가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고 할 때 내가 무슨 자격으로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들더군요. 또 제가 연극배우하며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가 선배들이 ‘나도 한 때 왕년에 연극 좀 했어’라고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느 순간 그런 선배가 될 것 같았어요. 집사람에게 이야기해서 포장마차 접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올라왔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K리그를 보며 한 순간도 영화 촬영에 소홀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축구를 보러 가듯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오거든요. 선수들이 성의 없는 플레이를 하면 제가 화나듯 영화가 재미없고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객들이 실망하겠죠. 전 열심히 연기해서 관객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요. 또 쉬는 시간에는 축구장으로 가서 값어치 있고 ‘맛있게’ 축구를 소비하고 싶고요.”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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