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성악가들도 신명난 춤
“신이시여, 우리의 영혼 속에 참된 정의와 평화의 불씨를 지펴주소서, 자유를 향한 갈망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정을 맹세하는 두 남자의 노래가 끝나자 연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젊은 테너 문세훈과 함께 무대에 선 플라시도 도밍고(75)는 아리아가 절정에 달하자 바짝 얼어있는 문세훈에게 다가가 노래를 불렀다. 두 사람이 부른 곡은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의 이중창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바리톤인 로드리고 배역을 맡은 도밍고는 자기 목소리를 한껏 줄여 문세훈이 주선율을 내지를 수 있도록 배려했고, 전성기 시절 도밍고의 대표 배역인 돈 카를로를 맡은 문세훈은 깨끗하고 힘찬 미성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2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은 ‘한번 거장은 영원한 거장’임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2009년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전향한 도밍고는 이날 공연에서 바리톤 음역대의 곡을 불렀지만 맑은 음색과 풍부한 성량, 나이를 무색케 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2시간 40분 동안 앙코르까지 12곡을 불렀고, 7,0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객석 입장이 지연되며 7시 15분에 시작한 공연은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 연주로 시작됐고, 이어 도밍고가 무대로 걸어나오자 객석에서는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내 명예를 더럽힌 것은 당신이었다’를 부른 도밍고는 청아한 음색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특히 연주 중간 박자가 불안정해진 오케스트라를 노래로 리드하는 노련미를 보이기도 했다. 1부에서 도밍고는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신성한 사원에서’를 테너 김건우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당신 아버지에게 말하지 마오’를 소프라노 박혜상과 함께 부르며 젊은 성악가를 국내 팬들에게 소개했다.
공연의 백미는 스페인 노래를 선보인 2부였다. 소프라노 강혜명이 부른 ‘어떤 개인 날’(오페라 ‘나비부인’)이 끝나고 무대에 오른 도밍고는 스페인 작곡가 모레노 토로바의 ‘사랑, 내 삶의 모든 것’(오페라 ‘마라빌라’), ‘승리를 위해 믿음으로 싸웠노라’(오페라 ‘루이사 페르난다’), 파블로 소로사발의 ‘그럴 리가 없어요!’(오페라 ‘항구의 선술집’)를 매끄럽게 부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1990년대 ‘스리 테너’ 공연 때부터 선보인 도밍고의 대표 레퍼토리들로 전성기 못지않은 폭발적인 가창력이었다. 9시 25분 모든 성악가들이 무대로 나와 인사하고 꽃다발을 받으며 ‘정규 프로그램’이 끝났음을 알리자 한차례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환대에 화답하듯 도밍고가 다시 무대로 나오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스페인 곡 ‘베사메 무초’ 반주가 나오자 객석에서 탄성이 나왔고 일부 관객은 도밍고가 첫 대목을 부르자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관객과 노래 가락을 주고받는 풍경은 팝스타 공연을 연상케 했다. 소프라노 강혜명과 네 번째 앙코르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자 객석에서 또한번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 출연자가 릴레이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부르자 도밍고는 지휘대로 올라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공연 초반 바짝 얼었던 젊은 성악가들이 신명 나서 춤을 추고 지휘자 유진 콘도 덩달아 신이 나 마이크 앞으로 서 노래를 불렀다. 3층까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음악평론가 박제성 씨는 “스리 테너 시절 이글거리는 목소리,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여전한 무대였다. 공연이 체육관에서 열려 우려했지만 사운드 밸런스와 카메라 워크, 프로그램 안배 모두 만족스럽다. 특히 큰 무대를 통해 한국 성악가 소개하고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고 평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