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과 맺은 평화협정안
국민투표서 아슬아슬 부결
“전쟁범죄 심판” 여론에 밀려
정부ㆍFARC “평화” 의지에도
재협상 과정선 난항 우려
4년간의 협상 끝에 마련된 콜롬비아 정부와 최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안이 마지막 관문인 국민투표를 넘어서지 못했다. 협정 당사자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FARC가 모두 휴전을 준수하고 협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지만, 투표 결과로 내전의 상처를 미처 치유하지 못한 국민의 반감이 드러나면서 콜롬비아 정국은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일(현지시간) 평화협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결과, 찬성 49.78% 반대 50.21%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총 투표자는 643만708명으로 투표율은 37%에 불과했다. 반대표와 찬성표의 표차는 5만7,000표였다. 정부와 FARC는 재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협정을 맺고 국민의 추인을 받거나 의회가 현재 평화협정안의 입법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 결과로 협정의 정치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향후 추가 협상에도 큰 부담을 지게 됐다.
협정 체결 당사자들은 일단 어렵게 수립한 휴전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내게 플랜B는 없다”며 배수진을 쳤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남은 임기의 마지막 날까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 평화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 역시 공식성명을 통해 “이번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운동으로서 우리의 목표는 건재하고 강하다”며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무기로 언어만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이번 평화협정은 쉽게 추인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8월 30일 국민투표 문구가 공개된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늘 찬성 측이 우위였다. 콜롬비아 정부는 국민투표일에서 불과 5일 전인 지난달 27일 해안도시 카르타헤나에서 국내외 2,500여명이 참석한 대대적인 평화협정 서명식까지 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협정 반대를 주장한 우파 진영은 이번 협정안이 FARC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충분히 심판하지 않는다며 ‘정의를 실현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협정안에 따르면 FARC는 향후 2번의 의회 선거에서 10석을 얻고, 학살ㆍ고문ㆍ강간 등 중범죄를 제외한 범죄를 자백할 경우 인신구속형벌을 면제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지니 링컨 카터센터 미주프로그램 담당대표는 미국 CNN에 “50여년 간의 내전 끝에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평화협정을 콜롬비아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라 분석했다.
FARC가 2014년 이전까지 마약 밀매에 기대 조직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도 협정안의 도덕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요인이다. 우리베 전 대통령은 협정안이 부결된 후 “모든 콜롬비아인은 평화를 원하지만, 이 협정은 수정이 필요하다”며 특히 마약밀매에 관여한 반군 지도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재차 요구했다.
투표를 앞둔 1일 FARC측이 1,400파운드의 폭발물을 자체 폭파시키는 등 무장해제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기에, 당분간 휴전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화협상 자체는 난관에 빠졌다. 정부는 협정 반대진영의 압력으로 FARC에 더 가혹한 새 협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FARC가 응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번 협정 부결은 콜롬비아 내 제2반군인 민족해방군(ELN) 등 FARC 외 반정부 무장집단과의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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