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ㆍ최정순 회고 특별전
‘국민 글꼴’ 바탕체ㆍ돋움체 주역
서적 출판용 원도 설계한 최정호
교과서ㆍ신문 서체 개발한 최정순
1세대 한글 디자이너의 발자취
국립한글박물관서 11월까지 전시
활자 인쇄 기술의 변천사도 소개
“글자란 사상이나 뜻을 전달하는 도구. 읽는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디자인돼야 한다.”
흔히 글자는 감상의 대상보다 소통의 도구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전쟁 직후 열악한 여건 속에서 최정호(1916~1988) 선생은 한글의 디자인적 측면에 관심을 두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한글꼴이 탄생한 지금까지 ‘국민 글꼴’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바탕체와 돋움체가 그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글씨를 유려하게 썼던 그는 일본 요도바시 미술학원에 유학하며 본격적으로 글꼴디자인에 눈을 뜨게 됐다. 귀국 후 조그마한 문자 도안 사무실을 운영하던 그는 동아출판사 창립자인 김상문 당시 사장의 권유로 활자 원도(原圖ㆍ기계로 활자를 만들 기 전 그리는 글자꼴의 씨그림) 제작에 참여한다. “문자 도안에 있어서만은 일본인들을 이겨보겠다던 어린 시절의 결심”이 동력이었다.
한글은 초성ㆍ중성ㆍ종성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른 디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알파벳 등 나열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문자와 비교했을 때 글꼴 디자인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다 할 참고서적도 없는 상황에서 오늘날 한글꼴의 근간을 이루는 바탕체와 고딕체의 원형을 비롯해 72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굴림체, 궁서체 등 다양한 글꼴을 개발했다.
최정호가 서적 출판에 적합한 원도를 설계했다면 또 다른 글씨장인 최정순(1917~2016)은 교과서와 신문 활자의 원도를 주로 제작했다. 그가 개발한 활자는 1950년대 교과서 등에서 사용됐고, 1960년대에는 납작한 형태로 개량한 글꼴로 신문 서체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표준 바탕체와 돋움체 역시 그가 1990년대 문화부와 제정한 한글 글자본 제정 기준에 따라 제작됐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한글 글꼴 디자인에 힘썼던 두 장인을 회고하는 특별전 ‘두 글씨장인 이야기’를 별관 나눔마당에서 5일부터 11월 17일까지 개최한다. 최정호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한 이번 전시는 1세대 한글 디자이너인 두 장인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자료 195점으로 구성됐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일본 폰트 업체 모리사와의 소장품 57점도 포함됐다.
전시는 1부 ‘원도활자’와 2부 ‘두 글씨장이 이야기’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두 장인이 활발히 활동했던 1950년대 이후 활자 인쇄 기술의 변화와 그 근간을 이룬 원도를 소개한다. 원도활자는 제작할 활자의 크기와 같은 크기로 글씨를 그려 활자를 직접 새겼던 기존 방식과 달리 활자 크기보다 크게 원도를 그린 후 공정을 거쳐 간접으로 제작했다. 1950년대에는 자모 조각기와 활자주조기를 거쳐 납활자를 사용했고, 1970년대 이전 시기 원도는 마스터필름과 식자판을 거쳐 사진활자가 됐다.
2부에서는 원도 설계자 최정호와 최정호의 작업에 집중한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안상수 디자이너, 유족들이 갖고 있던 자료 등 두 장인의 흩어져 있던 유품과 작업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글꼴 제작과 관해 남긴 말들도 함께 선보여 장인의 생애까지 엿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원도 제작은 기술적 설계와 예술적 디자인의 총합”이라며 “전시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두 장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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