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네빌 마리너가 2일 92세로 별세했다고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체임버 오케스트라(ASMF)가 밝혔다. 15세에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에 바이올린 연주자로 데뷔해 지난달 29일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지휘봉을 놓기까지 77년 동안의 음악 인생이었다.
영국 동부 링컨의 음악가 집안에 태어난 마리너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왕립음악대학, 파리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잠시 자코비안 앙상블을 결성했다가 미국 메인주 핸콕에 있는 피에르 몽퇴 음악학교에서 지휘를 배웠다. 1959년에 몇몇 연주자들과 함께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실내악단으로 ASMF를 만들었다. 악단 이름은 연주 장소인 런던 중심가 교회에서 따왔다.
마리너는 ASMF를 이끌며 바로크시대와 고전시대 레퍼토리로 바흐, 헨델, 모차르트, 하이든 등을 연주해 명성을 쌓았다. 최초 18명이던 악단 규모는 연주를 거듭하면서 대악단과 합창단까지 갖춘 풀 오케스트라로 변신했으며 연주 레퍼토리도 시대를 가리지 않고 폭이 넓어졌다. 현대음악으로 차이콥스키, 레스피기, 버르토크 등을 연주ㆍ녹음했고, 특히 현악합주곡에 애정이 많아 바로크와 모차르트 작품은 물론이고 영국과 북유럽의 작품들을 자주 무대에 올렸다.
음반 제작에도 적극적이어서 500개 이상의 레코드 녹음으로 카라얀과 기록을 다툴 정도였다. ASMF 악단은 1984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주로 모차르트곡을 편곡한 밀로시 포르만의 OST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의 서곡과도 같은 첫머리의 모차르트(교향곡 25번 1악장) 선율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음반은 수백만장이 팔렸다.
마리너는 ASMF를 이끌면서 로스앤젤레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독일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도 맡았다. 1991년 필립스에서 주관한 모차르트 전곡 연주에 주역으로 참가하며 악단의 명성을 굳혔다. 85년 기사작위를, 지난해에는 음악가로는 드물게 영국 왕실에서 주는 명예 작위를 받았다.
지난 4월 방한해 손열음과 협연하는 등 한국에도 여러 차례 찾아왔으며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서혜경과 협연한 모차르트 앨범이 나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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