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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서점 한 번 내볼까” 문화계는 요즘 책방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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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서점 한 번 내볼까” 문화계는 요즘 책방앓이

입력
2016.10.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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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동 책방 '고요서사'.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서울 용산동 책방 '고요서사'.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동네책방의 맏형이라 불리는 ‘땡스북스’로 널리 알려진 이기섭 대표는 요즘 매장이 있는 강북이 아니라 강남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외서 전문 서점과 손잡고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일대의 핫플레이스라는 ‘퀸마마마켓’에다 1일 책방을 열기 때문이다. 기존 땡스북스의 색깔과 차별화하고, 도산공원에 둘러싸인 공간의 특징을 감안해‘PARRK’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표는 “수익률이 낮아 서점을 찾기 힘든 강남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참에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면서 “원서와 번역서를 함께 배치하는 등 홍대와는 다른, 이 동네에 어울리는 새로운 콘셉트의 서점을 시도해보겠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자이자 ‘이명현의 별 헤는 밤’ 같은 과학대중서를 펴내고 있는 천문학자 이명현은 12월쯤 서울 삼청동에 과학책 전문책방 ‘갈다’를 낼 예정이다. 아직 최종 낙점된 이름은 아니지만 ‘갈라파고스의 다윈’을 줄인 말이다. 이 서점은 과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학자, 저자, 번역자 등이 주주로 참여한다. 요즘 과학대중서가 쏟아지면서 사정이 좀 나아졌다지만, 과학책 시장은 흔히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소수 정예’라 불린다. ‘소수’이니 대박 날 일은 없을 지 몰라도 ‘정예’들이 모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계는 지금 ‘책방 앓이’ 중이다. “문화 쪽에 관심 있고,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커피, 와인, 음악 같은 것에서 지금은 완전히 ‘책방’쪽으로 넘어왔어요.”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달뜬 목소리다. 정 대표는 ‘탐방서점’을 낸 서평가 금정연, 소설가 김중혁과 함께 한 때 동네책방 전도사였던 적이 있었다. 그는 “모였다 하면 누군가 ‘이런 콘셉트의 책방 한번 해볼까’는 제안을 내놓고, 호기심에 찾아보면 비슷한 책방이 이미 있을 정도로 요즘 최고의 문화 트렌드는 책방”이라고 말했다. 사람들 관심도 많다. 블로그나 SNS에도 인증샷이 넘쳐난다.

서울 신촌의 동네책방 '위트앤시니컬'.
서울 신촌의 동네책방 '위트앤시니컬'.

책방이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배경은 여러 가지다. 교육수준, 소득수준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일고 있다. 서점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집객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는 장에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책 본다는 데 뭐라 그럴 사람은 없다.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낸 최인아씨의 ‘최인아책방’에서 연예인 노홍철의 ‘철든 책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책방을 내면서 ‘화제성’도 극대화됐다. 도서정가제 영향도 있다. 가격할인폭이 제한되면서 대형서점의 마케팅 파워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개성과 색깔을 지닌 동네서점이 널리 퍼져나갈 여지가 생긴 셈이다. 대형서점들로서도 뭔가 색다른 매력을 내놔야 할 시점이 됐다.

책방의 변신을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각인시킨 건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면 리뉴얼이다. 의자를 늘리고 아늑하게 만들었다. 영풍문고도 9월 종각점을 새 단장했다. 동네책방들은 훨씬 더 자유롭다. 커피나 술을 내놓기도 하고, 낭독회나 콘서트 같은 문화행사도 기획한다. 수입원을 책 판매 이외 영역으로 분산해 지속가능성을 끌어올리면서도, 책 이외에 다양한 경험까지 함께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서울 이태원의 동네책방 '다시서점'의 내부.
서울 이태원의 동네책방 '다시서점'의 내부.

서울 논현동의 북티크는‘심야서점’을 열어 밤새 책만 읽는다. 염리동 ‘퇴근길 책 한잔’은 제목 그대로 책과 술을 함께한다. 지난 추석 때 “명절날 친척 잔소리를 피해 책방으로 대피하라”는 이벤트도 벌였다. 충북 괴산의 ‘숲속의 작은 책방’은 무조건 책 1권씩을 강매한다. 유희경 시인의 시집 전문 서점으로 널리 알려진 신촌의 ‘위트 앤 시니컬’은 LP판 등 음악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공간 ‘프렌테’와 카페 ‘파스텔’이 한 공간에 있다. 시집 보러 왔다 차 마시고, 그러다 음악도 듣고 가라는 얘기다. ‘다시서점’은 저녁마다 술집 ‘초능력’으로 변신한다. 북바이북, 일단멈춤, 도어북스, 스토리지북앤필름, 봄날의 책방, 책방 만일 등 이런 콘셉트로 화제에 오른 책방들은 인터넷 등에서 검색해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덕분에 서점의 감소세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서점조합회가 2년마다 내는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서점은 1,559개. 서점이 계속 없어지고는 있지만, 감소폭이 7.2%에서 4.1%로 줄었다. 50~100평 중형 규모의 서점은 서점들의 전반적인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2009년 317개에서 2015년 346개로 소폭 늘기도 했다.

‘고요서사’의 내부.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고요서사’의 내부.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책방앓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책은 좀 더 팔리고 있는 걸까. 이 대목은 아직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매장 리뉴얼이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큰 도움은 됐지만 수익으로 연결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동네책방 관계자도 “화제가 됐다지만 월말 결산해보면 있는 돈 까먹는 달이 더 많고, 남아봤자 몇 만원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SNS족의 배경화면으로 관광지처럼 소비되다 보니 동네책방인데 정작 ‘동네’와 ‘책’은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한 동네책방 주인은 “서점인데 카페 같은 분위기다 보니 동네책방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다른 서점에서 안 할 행동이라면 동네책방에서도 안 하는 게 맞다”고 꼬집기도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지금 책방 열풍의 핵심은 ‘취향과 가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라면서 “책방을 찾는 고객들도 책방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가라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 뒤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책방앓이’의 힘은 아날로그적인 그 무엇을 찾는 이들간에 흐르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 간에 흐르는, 묘한 공범의식에서 나온다. 개점 한 달을 맞은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직장보다 더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강남에 책방 내줘서 고맙다는 너무 많은 응원이 있어서 나 스스로 고무되어 있다”고 말했다. “가끔 어떤 시집을, 그냥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사도 되는데, 이 책만큼은 이 책방에서 꼭 사야만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들이 계세요. 책은 어디서 사나 그냥 다 똑 같은 책일 뿐인데 말이지요. 참 고맙고도 신기한 경험인데, 그게 책방을 하는 맛이지요.”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의 말이다. 그 덕에 아직은 주변사람이 책방을 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매운 맛(?)을 덜 봐서 그렇겠죠”라며 웃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서울 마포 책방 '만일'.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서울 마포 책방 '만일'.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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