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졸리면 책장 뒤 침대로 들어가세요!’
일본 도쿄 한복판 이케부쿠로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BOOK AND BED TOKYO’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책방이다. 지난 주말 오후 3시 방문한 이 책방엔 수십여명의 손님들이 소설과 만화책, 사진집, 비즈니스 전문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을 들고 안락의자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었다. 1,400여권이 꽂혀있는 책장 뒤엔 독서용 전등이 달린 1인용 침실 30개가 준비돼 있고 사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일본은 출판대국이라고 하지만 점점 책을 안 읽는 사정은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지하철을 타면 간혹 노인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승객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책이 안 팔리자 서점들도 달라진 세태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이다. ‘호텔서점’이라 할 수 있는 ‘BOOK AND BED TOKYO’의 대표 리키마루 소(35)씨는 “세계에서 저가호텔과 서점 콘셉트를 융합한 경우는 우리가 처음”이라며 “도쿄에 외국관광객이 늘어나는데 호텔은 부족한 현실과 줄어드는 독서인구를 감안해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개업한 이 서점은 평범한 도심 건물 7층에 있다. 체크인 시각은 오후 4시. 입실용 비밀번호가 담긴 카드를 받고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3,500엔(3만7,000원)부터 넓은 방은 4,000엔, 금토일은 1,000엔이 더 붙는다. 리키마루 대표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시간당 500엔의 도서관만으로도 운영한다”며 “손님의 3분의 1은 외국인관광객, 나머지는 국내 여행 중인 일본인, 도쿄에 살면서 조용히 책만 보고 하루를 보내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변에 식당들도 넘쳐나고 비즈니스호텔을 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이번 겨울 교토점을 오픈하고 내년에는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서점은 적잖게 소문이 나 두어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오기 힘들 정도다. 고객의 80%는 20~30대 젊은 여성이라고 한다. 리키마루 대표는 하루 매출이 대략 120만엔 정도라고 귀띔했다. 종업원 스노 나쓰키(22)씨는 “한국인 여성관광객들이 소문을 듣고 자주 찾고 있어 패션 관련 책을 더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퍼블리싱 앤 북샐러스’도 고정관념을 깬 서점이다. 출판불황 시대를 맞아 출판업자들이 모여 소량의 책을 발간해 직접 공급하기 위해 서점을 차렸다. 문화ㆍ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잡지 ‘Rocks’등 연간 두 세 종류의 책을 500부씩 발간해 단골들에게 바로 바로 판매한다.
이 서점의 손님들은 뭔가 색다른 책들이 비치된 데 매력을 느낀 부류다. 지난 28일 이 서점을 찾은 30대 직장인은 “일본에는 책이 워낙 많아 어디 무슨 책이 있는지 잘 모른다”며 “전문가가 엄선해 책을 모아 놓으면 여기 와서 테마별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이 서점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참 진열대를 둘러본 그는 “이곳엔 큰 서점에 흔히 있는 베스트셀러가 1권도 없다”며 “작년 말 타계한 유명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히틀러’,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이 모은 세밀한 비행기 도면들을 담은 ‘비행선 시대’란 희귀한 책 두 권을 지금 발견해 기쁘다”고 말했다.
미나모토 하루나(25) 점장은 “여성 고객의 경우 패션지를 읽고 구매 욕구가 생겨 준비해 둔 화장품을 바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며 “주말엔 100명 넘는 단골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