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니까 저를 ‘북 디렉터’라고 불러주시는데, 대단히 영광스럽지만 전 한번도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전 그냥 회사원이었어요.”
일본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 여행서적 담당으로 일하다 최근 한국에 돌아온 권정은(29)씨는 발랄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ㆍCDㆍDVD 대여 체인점으로 사세를 넓힌 쓰타야가 2012년 출범한 쓰타야서점은 ‘책 파는 서점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을 내걸었다. 책만 쌓아두는 게 아니라 테마를 잡아 관련 아이템들과 함께 전시하고 판매하는 기법을 도입했고, 그 덕에 출판 불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성장세를 유지하는 서점이란 명성을 얻었다. 국내 출판계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모았고, 대형서점뿐 아니라 중소형 서점의 변신 때마다 ‘쓰타야 모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권씨가 보기에 쓰타야의 핵심은 ‘경험의 제안’이다. 기존 시장 데이터, 기존 독자 데이터에 맞춰 아무리 새로운 전략을 짜내 봐야, 지금 같은 온라인 시대에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곳은 결국 아마존일 수 밖에 없다. 권씨는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독자를 뒤따라 가는 게 아니라 앞에서 끌고 나가는 것이고, 그건 기획을 통한 제안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이런 건 어때? 이런 건 어때?”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공간이 서점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쓰타야서점은 실제 건축 코너는 건축가가, 요리 코너엔 요리사가 배치돼 매주 기획전시를 진행했다. 독자가 물으면 전문적 설명도 곁들였다. 가령 요리 책은 스시 장인이 만든 실물과 함께 전시한다. 이는 초보적 수준이다. 새를 주제로 잡아서 새에 대한 책, 새가 먹는 열매에 대한 책, 그들이 날아가는 곳에 대한 책 등을 한데 묶기도 한다. 포인트는 출판사의 제안이 아니라 기획자 본인의 아이디어다. 한국 서점이 광고비를 받고 매대를 판다면, 쓰타야는 이런 기획비를 받는다. 권씨는 “쓰타야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코너 담당자들이 이 기획을 통해 고객에게 무엇을 제안하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고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쓰타야 모델은 그럼에도 너무 대중적이란 지적을 받는다. 판매 활성화에만 목적을 두다 보니 의미 있는 신간이 묻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권씨는 이에 대해 쓰타야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옳은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양국간 관습 차이도 있을 뿐더러, 모든 서점이 다 쓰타야가 될 필요도 없다. 권씨는 “책에서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재미 삼아 책을 보는 이들이 많다”면서 “어떻게 책을 읽도록 만들 것이냐는 고민의 과정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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