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해산 과정도 논란될 듯
대기업들로부터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아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0일 두 재단을 해산하고 문화ㆍ스포츠사업을 아우르는 새 통합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재단 설립 과정과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투명성과 경영효율성 등을 높이겠다며 내 놓은 조치다. 그러나 기업들의 모금이 자발적이었다는 전경련의 주장과 달리 정권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데도 명쾌한 해명 없이 재단만 없애겠다는 것은 당장의 논란을 덮으려는 ‘꼼수’란 지적이 적잖다. 야당은 ‘재단 세탁’이라며 “정권이 개입됐다는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이날 통합 재단의 이사진은 공신력 있는 기관ㆍ단체들로부터 후보를 추천 받아 선임하고, 명망있는 문화ㆍ체육계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사업전문성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또 매년 상ㆍ하반기 외부 회계법인을 통한 경영 감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통합 재단 운영에 대한 경제계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두 재단 사무실도 여의도 인근으로 옮기기로 했다.
통합 재단의 기금은 미르(486억원), K스포츠재단(288억원)의 기금을 합친 774억원에서 그 동안의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20억여원을 제외한 750억원 규모다. 민법에 따르면 미르, K스포츠와 같은 비영리법인은 해산할 경우 정관에서 지정한 사람이나, 비슷한 목적을 가진 법인에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두 재단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법인 해산을 의결한 뒤 통합 재단에 재산을 증여해야 한다.
관할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비영리 재단법인은 자금 출연자의 판단과 의지가 가장 중요한 만큼 정해진 요건을 갖춰 정식으로 요청하면 그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정관에 따라 해산 절차를 밟고 그 뒤 새로 재단법인을 꾸려 신청하면 (승인)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단 해산 절차와 관련,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K스포츠의 경우 이사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해야 하지만 이미 지난 29일 2대 이사장인 정동춘씨와 주종미, 김필승 이사는 사의를 표명했다. 나머지 이사들도 사임한 상태다. 결국 K스포츠재단은 사의를 밝힌 이사들이 모여 해산을 결의하거나, 해산 결의를 위한 ‘원포인트’ 이사진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단의 해산 등을 결정하는 것은 이사회의 고유 권한인데, 기금을 모금하는 데 관여했을 뿐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전경련이 재단 해산과 통합 계획을 밝힌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재단 설립을 위한 모금 과정부터 재단 해산과 통합 결정까지 재단의 자율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양새인데, 제기된 의혹에 대한 규명 없이 새로운 재단만 만든다고 해서 논란이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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