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시장 뒤치다꺼리 하는 형사
‘비트’ 주인공 민 떠올리게 해
“영화 속 세계가 지독하고 처절
액션연기 힘들다는 생각 못해”
배우 정우성(43)이 독해졌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악에 받쳐 이글거린다. 연민과 정의는 영화 ‘아수라’ 의 세계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그곳은 “악이 난무하는” 폭력의 도시다. ‘아수라’가 개봉한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영화가 그려낸 세계 자체가 지독하고 처절해서 물리적인 폭력을 액션연기로 표현하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정우성이 연기한 한도경은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온갖 부정한 일을 뒤치다꺼리하며 돈을 받는 비리 형사다. 한도경의 약점을 포착한 다혈질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박성배의 살인교사 증거를 가져오라며 한도경을 압박해오고, 한도경은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을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낸다. 이렇게 서로 물고 물리며 만들어진 악의 생태계 안에서 생존의 수단은 오직 폭력뿐이다. 정우성은 “영화는 현실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극대화해 묘사한 것”이라며 “주변환경에 의해 악행을 저지르는 한도경의 얼굴에 삶에 찌든 40대 중년 남자의 피로감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비현실적인 세계로 들어온 정우성의 비현실적인 존재감이 도리어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건 어떤 ‘연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정우성과 함께 한 시대를 보낸 관객들은 ‘아수라’의 한도경을 보며 영화 ‘비트’(1997)의 주인공 민을 떠올린다. 희망 없는 젊음에 좌절했던 민이 40대가 됐다면 한도경 같은 모습이었을 거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관객들이 영화 밖에서까지 정우성이란 사람의 세월을 목격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비트’를 염두에 두고 연기하지는 않았지만, 제 안에 민을 품고 있기는 하죠. 저는 아직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웃음). 잘 나이 들게 하고 싶어요.”
정우성은 ‘비트’로 영원불멸한 청춘의 아이콘이 됐다. “‘비트’가 배우 인생을 비틀어놨다”고 ‘아재개그’를 던진 그는 “다음 터닝포인트는 ‘아수라’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트’로 그의 삶을 바꾼 김성수 감독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태양은 없다’(1999)와 ‘무사’(2001)까지 더해 네 번째 의기투합이다. “감독님과의 작업은 늘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그랬기에 한 시대의 시그니처가 만들어진 것이겠죠. 감독님을 통해 배우가 아닌 영화인의 시각으로 영화를 대하는 법을 배웠어요. 선배로서 존중하고 앞으로도 함께할 겁니다.”
신뢰로 뭉친 ‘아수라’ 팀은 끈끈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촬영으로 부산에 머물던 중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함께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정우성과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은 매니저도 없이 스태프의 승합차를 직접 몰고 찾아왔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정말 컸어요. 아주 뜨거웠죠. 경쟁심은 없었지만 캐릭터적으로 건전한 경쟁이 됐습니다.”
정만식은 정우성과의 액션 장면을 떠올리며 “고려청자 대하듯이 소중하게 다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우성은 여전히 동세대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연예인의 연예인’이다. 하지만 그는 명성보다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변 시선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배우로서의 자세와 가치관을 증명하는 게 더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외모가 연기 변신에 걸림돌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나다움’을 찾아서 일상적 감성과 연결고리를 찾는 게 맞는 거라 봐요.”
‘사고방식까지 잘생겼다’는 생각이 스치던 즈음 정우성이 진지해진 분위기를 깨뜨리며 장난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제가 잘 생긴 거, 저도 알아요. 나쁜 점이요? 하나도 없어요(웃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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