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많은 단상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매사 씩씩하면서도 허점투성인, 그래서 사랑스러운 노처녀 브리짓이 12년 만에 돌아왔으니 일단 반가웠고, 주름이 얼굴을 파고든 브리짓 역의 르네 젤위거를 보며 당황스럽고 조금은 서글펐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2004)에서 발그스레하고 팽팽한 볼로 화사하게 웃던 젤위거는 이제 없다. 일상의 피로로 신체에 균열이 진행 중인 40대 중년의 브리짓을 바라보며 과연 로맨틱코미디라는 이 영화의 달콤한 속성이 스크린에 제대로 펼쳐질까 괜한 우려도 했다.
하지만 곧 기분 좋은 웃음을 연신 터트릴 수 있었다. 록페스티벌에서 만난 한 남자와 얼렁뚱땅 잠자리를 함께 한 며칠 뒤 옛 연인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재회해 또 다른 잠자리를 갖게 되는 모습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엉뚱한 브리짓다웠다. “나이든 배우들의 사랑이야기면 어때?”라는 반문도 하게 됐다. 아기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핏줄에 대한 강박 어린 집착으로 변질시키지 않는 두 남자의 모습이 특히 흥미로웠다. 자기가 아빠일 것이라는 기대감, 브리짓의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두 남자에게서 남녀 사이의 해묵은 권력 관계를 뒤집는 전복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행복하게 살고픈 남녀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는 판타지다. 현실을 밑그림 삼았다고 해도 극장을 나올 때쯤이면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애 안 낳기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한국사회의 우울한 현실을 새삼 되돌아보게 됐다.
노련한 뉴스 PD가 됐으나 이젠 매사가 심드렁하고,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놓인 브리짓에게 임신과 출산은 삶의 새 활력이 된다. 마크와 그의 사랑의 라이벌 잭 퀀트(패트릭 뎀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생명과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출산은커녕 일에 찌들고 노후를 걱정하며 짓눌린 일상을 보내는 한국 남녀의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우연의 일치일까. 제작 10년 만에 한국에서 뒤늦게 개봉(22일)한 영국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의도치 않게 저출산 한국에서 연출될 끔찍한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 영화는 2009년 까닭 모르게 세계의 모든 여자들이 불임 상태가 되면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세계는 집단 우울증에 빠진다. 미래를 짊어질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현실은 죽음만큼 무서운 무기력을 유발하고 사회는 혼돈 그 자체다. 자포자기 테러와 난민으로 뒤덮인 미래 사회 속에서 영화는 아기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서 아기는 규범과 전통과 옛 질서까지 예외로 만드는 존재다. 새로운 생명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로맨틱코미디를 보며 우울한 현실을 떠올리자니 문득 이 사회의 미래가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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