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를 상징하는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3세. AF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뇌졸중 치료를 받던 페레스 전 대통령이 이날 오전 급격히 병세가 악화하면서 숨을 거뒀다.
페레스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을 일단락하고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한 오슬로 협정(1993년)을 성사시킨 주인공으로 당시 총리인 이츠하크 라빈,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함께 19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고인의 평소 신념은 중동평화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페레스는 1923년 폴란드 비슈니예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34년 당시 영국이 위임통치 중이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1943년 청년 시오니즘 노동자당 서기가 되면서 정계에 진출한 그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직후 해군 총수로 임명되며 건국 초기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1953년 29세의 나이로 이스라엘 국방부 국장으로 임명된 페레스는 이후 제2차 중동전쟁 당시 영국, 프랑스와 함께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스라엘의 자주국방과 유대인 정착지 확산을 주장하며 강경파의 선두에 섰던 페레스는 70년대에 접어들며 팔레스타인 등과의 평화정착을 도모하는 온건파로 돌아섰다. 이후 두 차례(84~86년, 95~96년) 총리를 지내는 등 이스라엘 정치사의 중심에 섰던 그는 오슬로 협정과 더불어 이듬해 요르단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면서 중동 평화 정착의 초석을 놓았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제9대 대통령을 역임한 페레스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상호이해와 공존을 위해 설립한 페레스 평화센터를 돌보며 여생을 보냈다.
온건파와 강경파를 오가며 이스라엘과 중동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페레스의 영면에 전 세계는 애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가로부터 사랑 받던 인물이 떠났음에 개인적인 슬픔을 느낀다”고 추모했다. 이스라엘과 사실상 적대관계인 팔레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도 그를 ‘평화를 위한 파트너’로 칭하면서 1990년대 오슬로 협정의 성사를 위해 노력했음을 높게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페레스를 ‘이스라엘의 진수 그 자체’라고 평가하며 “시몬을 내 친구로 부를 수 있었다는 데 항상 감사해할 것이다”고 밝혔다.
페레스의 장례식은 30일 텔아비브에서 거행될 예정이며 장지는 이스라엘 주요 인사들의유해가 안장된 예루살렘 서부 헤르츨 언덕에 마련된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오바마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영국 찰스 왕세자 부부가 장례식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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